[작가노트] 고성작가노트2
고성작가노트2
훤히 보이는곳에 누워
비바람과 천둥을 그대로 맞는다
기운은 아직 부족하여
안이 밖과 다르지 않다
신령은 만만치 않아라
밤새 몸살을 앓고
늦은아침에
신성봉을 바라보니
밤새 백설이 오셨구려
2022.10.25
ㅡㅡㅡㅡㅡㅡㅡㅡ
길은 오직하나인것 같다
도시나 시골이나
산이나 바다나
사람이 있는곳은 더럽다
사람을 이해하려고 하였네라
그러나 여지껏 그랫듯이
상처가 되어 돌아온다
파도만이
바람만이
날 위로할수 있네라
아니면 죽던지
사라지던지
2022.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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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은
그저 풍경이 아니다
마음을 끌고가
원하는대로 주나니
기분따라
비가 오시고
기분따라
바람이 부신다
태풍으로
티끌 의혹을 거두나니
사람이여
분노할지어다
2022.9.21
ㅡㅡㅡㅡㅡㅡㅡㅡㅡ
무엇을 할까?보다는
무엇을 하지 말것인가를 생각한다
말이 많아지면 멀어질 가능성이 더 커진다.
단순하고 명료하게
마침표보다는 점점점으로 포괄하고
한사람이라도 더 즐거우면
가까와지는 것이다.
반드시 기억해야 할것은
모두가 만족하는 것은 없다.
유토피아는 신앙의 도구일뿐
같이하면 좋은 몇몇 사람들
그리고 그들을 사랑하는 몇몇 사람들
더불어 미소지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리라
2022.9.11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풀이 나무가 되지 못하는데는
필경 이유가 있다
자기 선자리도 짚지 못하고
그저 분신에만 마음 쏟으니
무서리치는 한 식경에
벌레를 앞세워 사라질밖에
나는 왜 풀잎처럼 떠있는가
마음을 내어주지 못하고
마음을 얻지 못하니
간신처럼 잰걸음만 뻗고 있구나
하기사 그 작은 결핍을 채워
나의 무엇이 되고는 했지만
진정 이 공허가
삶이란 말이냐
2022.8.20
ㅡㅡㅡㅡㅡㅡㅡ
십자가는
하늘과 땅이 만나는것이다
예수께서 스스로 십자가에 박혀
만천하에 밝혔음에도
아직도
하늘과 땅의
격을 나누는가
하늘의 신들이
땅으로 내려왔고
땅의 신들이
사람에게 통한다
자기를 비워낸 사람을
신명이 찾고 있다
사람이 성공해야
신도 성공하느니
신과 사람은 합일되어
새로운 우주에 살리라
2022.8.7
ㅡㅡㅡㅡㅡㅡㅡ
한순간 호흡을 모아
주저없이 쏟아낸다
두개의 에너지가
때로 충돌하고
때로 밀어내며
때로 하나가 된다
내 안의 상식에 갇혀
다듬는 일에 빠지지 않고
다시 떨어지기 싫은
저 밝은 공간으로
한걸음 더 내딛는다
부서지고
부서진다
다 부서지면
벗어나리라
2022.8.5
ㅡㅡㅡㅡㅡㅡ
올들어 가장 뜨거운 날이다
작업실까지 열기가 느껴지는데
선풍기가 애쓰고 있지만
햇살을 버텨내기 힘들다
그래서일까
생전처음으로
보라색과 연두색을 배치하여
낯선 공간을 부르고 있다
찬기운을 모았으니
두어시간만
잘 버티면 될것같다
2022.8.3
ㅡㅡㅡㅡㅡㅡ
기운이 소진되면
앞바다로 달려가
레쓰비 한잔하며
하늘바다 소리로
공허를 메웠건만
사람이 붐비는 바다는
나의 바다가 아니다
구름속 삼매경에
지루한 비명일어
벗이오는 오늘은
바다로 마실가리
2022.8.1
ㅡㅡㅡㅡㅡㅡㅡ
머가 그리 급한고
더디게 지금을 사랑하고
가까이 고운 사람 한번 보고
반기는 바다가에 가끔 앉고
꼭 회에 술을 먹어야 하는가
생선구이에 된장찌개면
마음나누기 충분하지
친구
다친 마음일랑 이제 내려 놓게
자네가 그랬던것처럼
내가 안아 줌세
2022.7.29
ㅡㅡㅡㅡㅡㅡㅡㅡ
매순간
허공위를 걸었다
이슬을 따먹으면
배부를줄 알았네라
태도와 호흡이 모여
운명을 만들더니
서사는 어느날
구름처럼 다가왔다
2022.7.27
ㅡㅡㅡㅡㅡㅡㅡ
모서리 낯선 바람 다맞고
터주대감과 기싸움 몇판에
패기는 흩어지고
열정은 흐물대는구나
껍데기 너덜대고
생기를 잃어갈 즈음
이제사 나의 말이
담기고 있노라
꿈인가 깨었는가
몇날을
생각없이 쫒고있다
2022.7.18
ㅡㅡㅡㅡㅡㅡㅡㅡ
산안에
마을안에
폐교안에
그림안에
상념을 담고 있어
하늘울음이 결계를 치고
다른세상에 갇혀
마음껏 울고 있어
눈물을 다 덜어내면
구름을 뚫고 솟아
산일랑은 비울수 있을런지
2022.7.26
ㅡㅡㅡㅡㅡㅡㅡㅡㅡ
너무 아름다운 자연을
그대로 보여주려 하면
모사에 그칠것이 분명하니
비틀고 과장한다
편린을 확대,반복하여
오직 이야기를 드러낸다
내언어인냥 하는것은
실은 내안에 각인된것을
세상속 어느 형식을 빌려
재생하는것에 불과하며
형,색,현상, 점 하나도
본래 자연아닌것이 없다
그리하여
우여곡절 편집이 끝난것은
공적자산으로 능히 돌아갈 것이며
아직 피지 못한 미완작만이
내안에서 머무르리라
배설한것과 품고있는것이
저절로 나의향기가 되고
깊어져 예술의 향기도 되느니
이쯤되면
그 향이 친구를 부른다
2022.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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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알려 주었다
내 맘속에
움직이는 산이 있다고
그가 말해 주기 전에
나는 그것이
물인줄 알았다
끊임없이 흘렀기에
그 산은
한자리에서
계속 흐르고 있었다
202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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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평에 넣고
쥐어 짜내면
회한만 이나니
참으로 쓸모 없도다
적어도
여섯평이 필요한것은
관조할 수 있는
거리가 필요해서지
꿈꿀자리 한평
먹을자리 한평
입을자리 한평
버릴자리 한평
비울자리 두평
그래 6평이면
천하를 품고도
여유가 있을 터
2022.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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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쇠한 정신에서
겨우 피워낸 꽃이런가
전생의 기억을 찾았는데
해무에 가리고
하루종일 하염없이
하늘울음에 흩어진다
너무 먼 그곳은
오늘처럼 항상
하늘이 낮다고 하였다
어제는 그리도 흐느끼더니
오늘 속절없이 높은 하늘만
덩그러니 남았구나
2022.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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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길만이 길이라고 여겼다
네비없던 시절
택시가 큰길을 벗어나
골목길을 지름길 삼을 때
그 얍삽함에 치를 떨었지
왜 기이한 사람들은
구지 돌아 작은길에서 위태로울까
큰길은 대인의 길이요
많은이들이 믿어 의심치않고
다툼도 갈등도 없으니
평강이요 진리였다
반하여 오솔길은
홀로 쓸쓸히 걷고
좁은길 멈춰 넓혀야 하고
갈림길에서 때때로 머뭇대고
인적없이 야생과 맞서며
아무도 관심없는 길이라
그리움의 천형을 살고
오로지 신과 독대하여
모두가 광인이라 하나니
누가 그를 찾겠느뇨
소꼬리가 아른댄다
운무가득한 산길
참회가 깊어질수록
한걸음씩 길이 열리고
소를 탈 수 있나니
아무도 찾지않는 협곡
신의 목소리와 노닐다가
전생의 연이라도 만나지면
큰길의 영화가
머 그리 대수겠소
2022.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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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넘어서
세상의 나로 나아간다
욕심을 꺽으려 하거나
욕심을 부정하려 했기에
많이도 아팠던게다
그저 잠시 내려 놓는 것이다
그저 멀리 떨어져 보는 것이다
그리하여 익숙해지면
그대로 더 멀어지면 될 일이다
세상의 의미가 되려면
그저 그대로 보고
잠시 꺼내 놓으면 될 일이다
2022.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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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싫어
도시를 떠났다
사람이 싫었겠나
사람에 묻어 오는
삶의 피고름내가
견디기 어려웠던게지
산고을에도
사람냄새가 난다
오래된 과거의 상흔들이
짠내와 섞여 오는데
해원은 요원하여
살풀이라도 해야 할 판이다
신이
모든 원을 풀고
병마만 남겼다 하나
마을깊은 한들은
밤마다
골방으로 숨어든다
노래하여야 한다
사랑하여야 한다
저들의 한숨이
영혼을 앗아가기 전에
오래 전
원한을 풀어내야 하리라
2022.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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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잎을 만지면
님보다 날랜 새가
허공을 가르누나
가없는 바람이라
시샘일랑 닿지않으이
머할라고 애쓰는고
태양은 고고히 서고
낯빛은 지루하게 자는데
붓칠 한번하고
돌아 앉았노라
부질없으이
산천은 이미
그림이 되버린걸
2022.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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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은
천둥처럼 온다했다
기다림에 베이고
마음삭아 뭉개질즈음
억수로 찾아드나니
서글픈 인생이여
살만하지 않을가
마지막 잿더미서
움하나 오르면
때문에
웃지 않을가
철지난 묵은때일랑
하늘비로 씻어내고
내일은 새옷을 입으리
202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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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간지풍이
백두대간을 지날때
다시는 만나지 않겠다 다짐했다
친구를 통해 안부를 물어와도
냉담하게 인연은 다했노라고
스멀대는 미련을 잘라버렸지
한점 의혹없이
되도록 멀리
쉬지않고 내달렸다
이름을 지우고 지우고
피안계가 어른거리나니
가던길을 주저하며
그래도 그때가 좋았노라
생채기내고 어루만지던
서로라고 부른 그 시절이
눈물처럼 그리웠노라
이 봄도 한숨밖으로 가고
사구에서 비틀대다가 문득
바다에게 주절댈게다
가슴뛰던 그 때가
정말 좋았네라고
2022.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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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햇빛이라 했던가
먼지에 부서져
밤보다 어둡도다
죽은자들에게
향방을 묻고 산다니
세상의 도는 간데없고
짐승이 행자위에 섰나니
꿈에서나 알까
수용하는것이 아니라
그저 감내하고 있음을
하늘은 시리도록 푸르건만
인걸은 어디메 있느뇨
2022.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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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판의 참새를 본적 있는가
나무와 먹이터를
떼지어 왕복하는데
자세히 보면
무리의 리더가
이끌고 있다
숲참새는 서로를 다툴뿐
천적이 두렵지 않다
저마다 한가로이 총총대며
마당한켠에서 평화롭다
서너마리가 서로를 의지하지만
대범하게 운동장을 가로지르는 놈도 보인다
2022.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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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 차오르고 있나봐
목련그늘 파고드는
햇살이 날카롭네
새들은 잎아래로 숨고
마당빛에 눈이 시린데
어느덧 아픈 계절을 잊고
낯선 시간앞에 서면
나를 뿌려 새겨야겠지
시나 쓰며 놀려했건만
형상으로 드러내야해
2022.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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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왜이리 눅눅하고
빛없이 어둑하고
지루한 회색하늘
날개에 붙는 끈적한 습덩이
녹음속 야수들의 비명
불현듯 내리꽂는 물기둥
아! 친구는 피하지 못했어
땅구멍에서 불이 솟으며
순식간에 어두워지는데
말로만 듣던
지옥인가봐
2022.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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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들이
어깨를 겨누어
선을 그리고
하늘은 덕분에
두조각이 되었다
나무들은
알지 못한다
그들이
하늘을 나눈것을
2022.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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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닿은 저 잎은
뿌리에서 온것을 알까
간절히 뻗어낸 가지에서
저토록 떠나려는데
보이지 않는 곳에서
시작한것을
생각이나 할까
깃털처럼 가벼운
냥이는
발자욱 새겨져
밤길 들킨것을
알고나 있을까
나는
어떤 무게로 서나
잎새 떠오르고
새들도 숨으면
무엇으로 살까
2022.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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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지못한 안개
지붕우에 쉬어가고
산책길 발걸음에
빛이 밟혀 있노라
밤새 누가 있어
산을 잘라 띄웠는가
냥이는 다 알고
흰숲으로 드는데
무엇으로 매일 아침
놀라느라 바쁜고
202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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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지나고
공간에 여백이 생기면
풍경은 그때서야 울수 있다
세찬 바람은
세세한 욕심을 비워내어
새것이 들어갈 여지를 만든다
새것이 차오르지 못했거나
비워진 그대로라면
바람이 다시 채워지는데
바람이 도는 이유가 그러하고
바람이 세찰수록
그런일은 자주있다
고성은 바람이 세차서
너무 좋아라
202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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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두고간 바람이
창가에 걸려
싹을 틔웠나 봅니다
그대 언약했던 서명에
붉은 눈물 뚝뚝
발바닥이 흥건한데
마음은 뜬금없이
남녘을 향하고 있네요
순간 그대는 내가 되어
지난 슬픔일랑 묻지않고
이 방을 나서려 합니다
자물쇠를 채우고
키따위는 남기지 않으려구요
그대 선한 기억만 가지고
홀가분하게 떠나려 해요
202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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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람이 옷을 벗고
초록에게 윙크할때
날 처음 불렀어요
향가득 꽃이 저물고
초록이 오를 때에
그대 오시기로 했자나요
빛품은 초록이
순결을 잃어가는데
이제 날 보러 오세요
눈물이 화석되고
떨림이 심연으로 숨으면
그대 오셔도
모를까 두려워요
2022.5.1
-------------
먼곳보다야
가까운 이에게
마음이 가는게지
도시의 그리움 보다야
시골의 애틋함에 끌릴밖에
사람이란게 그래
독하고 매정하다 수군대도
내 사랑이면 그만인게지
흔히 스치는 바람이라도
내 상처 닦아주고
내 부끄럼 안아주면
내겐 구원이요 신앙인걸
모두가 아니라고 하여도
때때로 내 하나의 빛이 되느니
세상만사 마음 가는대로
2022.4.28
-----------
빛가득한 시간
아가처럼 누워
양기를 받든다
기세를 견주려고
고개를 드는데
맞서는걸 불허하며
아직 저 넘어로 가기는
이르다고 말한다
몽환에서 깨어나니
새들이 분주하게
아침을 나르고
식욕이 꿈틀댄다
거추장스런 몸뚱이
기로서 충만할날
언제 오시려나
2022.4 26
-----------------
*
서둘러 핀 꽃
서둘러 지느니
먼저 피려고
다툴 이유 무어냐
마음껏 피어
벌이 품으로 안기면
생의 절정에 이르나니
누구나 꽃을 피웠고
전성기를 보았노라
오늘 저 꽃도 피었나니
필경 열매를 맺겠구나
꽃은 피고 지고
나는 지고 지고
2022.4.22
--------------
*
구지
능선에 올라
바다를 보려는가
사람아래서도
태양의 품 헤아리고
작은방에 누워
바람을 가늠하나니
머하러
바우일랑 오르겠나
2022.4.18
--------------
*
보름달을 먹었다
신성한 노동 후
국그릇에 허겁지겁
보름달이 들어왔다
만달을 하루넘겨 뭉그러진
우러날 준비를 마친 달이
내 수저안에 걸리고
주저없이 들이켰다
달이 있었는데
달이 사라지고
달이 안에서 차올라
간만에 달콤한 식사여라
노동으로 몸이 무너져
스스로 치유를 할때
생기를 찾은 그 끝에
달까지 먹었노라
2022.4.17
--------------
나는 계곡 너머에 있고
산등성이를 개간한
광활한 밭위에 흰 점이 보인다
시리도록 하얀 점이 펄럭댄다
나비인가?
아! 흰옷을 입은 농부이다
그런데 무슨 일을 하길래
저리도 신명나게 춤을 출까
섬광이 폭발하며 내게 쏟아진다
아뿔사 꿈이다
잠은 깨었지만
흰점이 여전히 어른거린다
차원다른 곳에서
비상한 움직임과
세상에 없던 빛
아! 그는 신선이었노라
2022.4.16
-----------------
*
고독하다는 것은
홀로있어 애타지 않고
창공처럼 투명하게 웃고
촌각으로 다투는
들꽃따라 마음길 바쁘고
말다른 생명과 눈맞추러
가던길 멈추는 것이네
사람 귀한 곳 어쩌다 만나
저마다의 잣대로 재단하여도
메아리가 되고 미소가 되고
돌아서면 잊는 것이네
무엇을 하지 않으니
마음에 부담일랑 없고
잠시부는 바람에 기대고 있다
툴툴 털고 돌아서는 것이네
고독하다는 것은
참으로 고요한 것이라네
수면아래로 잠겨
저 넘어 세상이 들리지 않고
호흡을 멈추어도
전혀 불편함이 없다네
해떨어지면 우는 개구리가
작은방으로 들어가는 것
그것이 고독이라는 것이네
2022.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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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 원암리 산불이
조기진화되고
양구에서 큰불이 났다
서쪽하늘 연기로 차고
태양은 빛을 접어
뻘겋게 또아리 튼다
노을이 아름다운건
땅에서 피어난
먼지 때문이란걸
태양이 스스로 증명하며
노을과 같은 점이 되었다
한날의 바람이 목련꽃을
여지없이 떨구더니
한시진의 화마가 하늘을 장악하니라
이렇듯 일은 갑자기 집행되나니
시공을 멍때리며
신명의 뜻을 헤아릴밖에
2022.4.10
--------------
목련에서 눈물 떨구더니
민들레로 미소 띠어라
잔인한 사월에서
자비로운 사월로
마음하나 틀어
평온을 찾나니
완전에 가까운 자유에
사방신명께 감사드리고
복마가 침투할
지저분한 것들을
다시 치워간다
2022.4.10
--------------
먼저 살다가 사라진자의
냉장고를 치우고 있다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자의
쓰레기를 이틀째 치우고 있다
화석같은 음식물에서 발사된
주검의 냄새가 나를 먹는다
한바탕 토악질을 하고
숨을 크게 들이쉬고
냉장고를 다시 연다
최대한 빠른 속도로
용기와,음식물과,낯선이의 냄새를 분리한다
나도 언젠가 이렇게
누군가에게 분리되겠지
2022.4.8
---------------
*
예술가는 순수하다
어린아이같다
덤불처럼 타오르고 식는다
예술가에게 비유는 작업행위이다
평생을 직접적으로 말하지 못하고
다른것으로 대신하여 말한다
그런 예술가가 솔직할 때
긴장해야 한다
그는 지금 사랑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일을 하고 있다면 계산을 하겠지만
자신을 믿어 주는 이에게
마음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예술가에게
되도록 말을 바꾸지 마라
순수한 마음은 이내 토라져
다 부수고 말 것이다
떠나고 말 것이다
그렇게 막 생겨먹은게
예술가란 사람이다
나는 방금 한 디렉터와 결별하였다
2022.4.8
--------------
*
누가 묻는다
당신의 재능을 왜 낭비하느냐고
난 속으로 웅얼거린다
재능을 뽐내려고 작가가 된것이 아닌데
그저 더 자유로와지려고
드높은 자존을 넘어서
공기처럼 흩어지고자 함인데
작은 나를 소멸하여
사라지고자 함인데
누가 자꾸 묻는다
그래서 쓰겠어요?
난 다시 고개숙여 부끄럽게 대꾸한다
아! 쓰임이 없이
저 창공처럼 그냥
푸르고픈데
사람들은 나를 이해하기 어렵다
사실
나도 내가 이해하기 어렵다
2022.4.7
---------------
쇳소리나는 바람이
동쪽을 강타하더니
곧이어 남쪽을 내리친다
어느 신비로운 곳
신의 입김으로 연유한 바람이
할일없는 자의 배신으로
폭발하고 찢겨져
그대로 난리법석이 되나니
사람들은 이를 보고
용바람이라 한다
지난날 상흔일랑
샅샅이 씻겨주오
새벽오는 바람아
202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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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시간
닿기를 소망했고
끝끝내 닿을 수 없음을 깨닫고
조금 밀어 두었지요
잊은줄 알았습니다
그래도 괜찮은줄 알았더이다
어느날 비내리듯
불현듯 그의 향이 들리고
고된하루가 행복했습니다
잠시 아픔을 잊었습니다
한때 진실했던 그 순간이
추억으로 남을 수 있게 되어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2022.4.4
--------------
봄비가 추적추적
앞산과 하늘을 가리더니
먼저핀 목련을 떨구고
천방지축 초록의 다툼을
애써 다독이네
봄의 따사롬에 취하고
사람의 무심함에 갇혀
세상에서 버려진
고사목인듯 누웠는데
문득 밀려드는 한기
난로에 땔감을 쌓고
정성스레 불을 피워
시린 맘을 녹이니
한숨처럼 들리는
세상밖 소리
아직
세상과 이어진것이
다행인지 불행인지
상념조차 일지 않고
그런 나를 바라보네
2022.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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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련이 피었으나
내 안에서 일러
여기저기 틔우는데
꽃이 피는것을
아는 이는 드물어
가난한 시절이 끝났다고
꽃들은 말하지만
사람들에게 미치지 못해
사람들은 꽃이 아닌
꽃을 기다리고 있어
아마도
저 꽃이 다 질 때에야
꽃이 피었음을
알게 될테지
2022.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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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시간이 가고나면
바람이 제 소리를 가르고
이름모를 새들의 수다가 이어지다
적막을 깨는 이장님의 확성기
바람도 잠시 움추리고
새들도 경청하는데
익숙한 소리에 반응하는
정해진 순서대로의 움직임
하나라도 어긋나면
섭섭할까봐
워낙 조용한 동네에
공사차량 분주한데
것도 자연의 소리와 섞이니
들어줄만 하네
언젠가 끝이 있음을 알기에
견뎌볼 수 있는게지
하기사 공간을 옮길때마다
언제나 공사가 한창이었지
터를 정비하는 공사들이었으니
신명께 항상 감사했었어
저기저 매화꽃을
몇번이나 볼 수 있을까
이곳의 신명은
어디로 이끌어줄까
계획을 세우지 않고
공간이 이끄는대로 살아보니
상처는 덜하고 감동은 더하고
점점 바보가 되는것 같아
자연으로 슬그머니
흩어질 수 있다면
것도 괜찮지 머
2022.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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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계속에서
목표를 설정하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고
성취한것을 나누고
그래 그런것이 삶이겠지
그런데말야
그 목표라는것이
사람 생겨먹은대로 좀 제각각이면 괜찮은데
왜 하나같이 같은것을 원하냐고
물질은 총량이 한정되 있고
그것으로 돌리고 나누는거야
충분히 가진사람만이라도
욕망을 멈춰주면 좋을텐데
수성한다는 명목으로 더 가지려 하고
떡고물이라도 챙기려 충성경쟁하고
마저 뺐기면 살 수 없으니 악착같이 물어 뜯고
그러니 온데가 갈등이고
다툼을 어찌 피할 수 있겠냐고
이런곳에서 예술? 나로서는 쉽지 않았지
그래서 묘수를 내었어
아무도 욕심내지 않는 곳으로 가자
욕심내어 찾아오기 힘든 곳으로 가자
나 지금 너무 좋아
가진것 아무것도 없고
다가와 시비거는 이 없고
점점 맑아지고
점점 고요해져
완벽하게 심심해질때까지
기다려 보려고 해
저 안 깊은곳에서
소리가 들릴 때까지
2022.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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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아침
어김없는
새들의 재촉
고양이 짝을 부르고
개들은 낯선이를 경계하는데
소울음은 어디서 오는지
일어나 알아 보라 하네
차도는 물처럼 감싸돌고
이장댁 넘어 양기충천 명우산
명우산 외로울까 죽변산이 든든하고
설산이 된 백두대간이 하늘위 고고하이
구성리 한가운데 분교
공들여 문화마을로 다듬어져
예술가를 담는 도량이 되었어
누구하나 시비걸지 않고
여린 마음 시험치 않으니
지난 허물과 상처일랑
낯설었던 한달에 씻겨
이제사 들리는 신명의 소리
준비가 다 되어 간다고
큰 선물을 받아 내라고
2022.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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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리시는지
오르시는지
하늘인지
땅인지
구름이 된 구성리
서걱대는 점 하나
느릿느릿
불씨 하나 피우고
가녀린 고구마 익고
꺼져가는 불사이로
겨우 내가 보인다
2022.3.13
--------------
깊고 바람찬 산야
언제나 넉넉한 바다
그 선율에 익숙해져
점점 깊어지고,단순해져
비로서 도시를 벗어 내었어
천년 간성
대자연의 뜨락에서
매일 장작패고 노나니
이곳 사람이
경계없이 인사하네
7번국도 따라
연들의 안녕을 묻고
아주 작은 일이라도
시간과 마음을 나누니
그래 이것이 사는거지
너무도 미미하여
눈길 주기 어려운 것들
생각이 멈추면
열리는 꽃망울
큰 소리로 볼거야
그래 이것이
살아있는거지
미동을 느낀다는거 말야
2022.3.8
-------------
*
돈이 없지
뜻이 없을소냐
비웠다 함은
물욕을 말함이지
드높은 기상을 어이할꼬
여태 비워
겨우 바다가에 이르렀는데
무엇으로 채워 다시 돌아갈꼬
정녕 불알하나 차고
사람없는 곳으로 숨어야 하나
한사람만 족하면 되느니
그 한사람이 다른사람 부르고
그렇게 나의 뜻이
우리뜻 되어
언젠가 충만하리니
2022.3.5
---------------
아무것도 가지지 않는것
아무것도 필요가 없는것
아무마음도 품지 않는것
무욕에서 무아로
전시가 끝나고
작품을 포장하고
실고 나르고
저절로 나오는 한숨
젠장
물질로 남기는 일은
이제 정말 그쳐야겠어
생각은 해왔지만
이제 몸이 지긋지긋해
누구나처럼
문명의 이기에 편승하고
시대와 부합하려는 것이 아니야
쌓여가는 작품들이
나를 옥죄기 시작했기에
그 번거로움을 감당하기 싫어서
이제 재료를 버리기로 하였어
최소한의 시간과 표현으로 작업하고
사랑할 자격이 있는 사람들과
마음가는대로 노래하고파
공간이 바뀔때마다
그곳이 이끄는대로 따라갔지
여기 새로운 신명들도
천천히 갈길을 열어 줄테지
늘 그래 왔듯이
2022.3.2
----------------
*
세상에서 떨어져
세상을 바라보니
안쓰러움 투성이다
아마도 악의 세력이
마지막 발악을 하는 것이리라
상생의 시대가 도래한지 오래건만
사람들은 타인을 거뜬히 지려 밟는다
곧 돌아와 크게 다칠것이 뻔히 보이건데
욕심에 눈이 먼것인지 알지 못한다
상극의 시대에서
사람을 수 없이 해한 이를
영웅이라 불렀다
그들은 국가의 기틀을 만드는 공을 세웠지만
사람을 해한 대가를 톡톡히 치루어야만 했다
전생의 업을 풀어내고자 하는 그대여
악인들의 영혼수집에 놀아나지 말지어다
그대는 그대의 일을 해야 하나니
냉정하게 시대를 보고
그대가 빚진 인연을 구별하여
하나하나 그대의 업을 푸시라
피하면 가중되어 돌아 오나니
피할 수 없음을 새기시라
악인들의 목적과
짐승들의 한풀이를 구분하여
그들에게서 제발 멀어지고
그대의 소중한 연을 만나고
그들과의 빚과 한을 푸시라.
2022.2.27
------------------
노을앞에서
풍경은 지고
새에게만 들리는
풍경의 손길
높은곳에서
낮은곳으로
모서리에서
안쪽으로
거친 호흡에서
여린 숨으로
사막에서
정원으로
아름다운
이동을 하였다.
2022.2.23
-----------
고성문화유산예술기록프로젝트에 붙여
*
공공은
나를 뺀 타자가 아니라
나와 타자이다
내가 먼저 있어
나의 지역이 있으니
이것은 사명이 아니라
나를 드러내는
지극한 예술이어라
측은지심이 깊나니
타고난 재주이어라
나를 열어 나아가는 일이니
나는 굳건한 축이 되느니라
그리하여 타자를 사랑함은
자기를 위함이니
자기를 사랑하는것은
지극히 당연하여라
우리는 이제
사랑할 준비가 되었나니
온바람 온잎새여
우리를 축복하라
2022.2.20
-------------
그래 맞아
우리 다른별에서 왔는데
그대의 온도와
입맛이 다를 밖에
우리 조금만 다투기 바래
닿지 않는 거리에 서서
우리 마주하면
더 안을 수 있어
제발 부탁이야
떨리는 손을 얹고
나란히 기대어
미지를 봐
사랑하는 친구야
잠시 같이
걷게 되어서
고마워
2022.2.11
------------
*
애써서 가져가는건
자네의 것이 아니라네
내것은 할일 없이 왔다가
구름처럼 흩어지는것
이제라도
남기려 하지 마세
감내하기 힘겨운
무지가 될까 두렵네
훌훌 벗고 가세
사람이 고되고
산야가 아프니
흔적일랑 머할라고 새기나
2022.2.11
---------------
그림은 머하러 그리나
예술은 또 머하러 하나
눈앞에 모든것이 있는데
그저 다만 기록할 뿐
저안의 나를
나의 너를
2022.2.8
---------------
벼랑끝에 서서
두 세상을 볼 수 있다고
당당하였노라
중앙을 경계하며
언저리를 탐색하다
때되면 비상하려 하였지
1년이 유보되었다
하늘은 다시 놀 시간을 주었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얼마나 절실할 수 있을까
사랑할 수 있을까
노래할 수 있을까
열정은 바람처럼 다시 피울까
더하여
부끄러운 밤들을 뒤로하며
난생 처음
내 수저를 바래 본다
2022.2.4
--------------------
님이여
이제 그만
꽃이 되소서
안쓰런 눈빛일랑
화판에서 지우고
하늘 덮고 모래 누워
이제 그만
하얀 꽃 되소서
2022.2.1
---------------
태양이 높을때
디테일은 긴그림자로 숨는다
로댕이 섬세함을 다듬는 시간이 되면
훤히 드러나는 세상이 있다
이쪽에서 저쪽으로 넘어가는
그 마법같은 순간에
내 치부는 드러나나니
노을을 사모하여
내일을 또 살아낸다
2022.2.17
--------------
길이란 희한하지
마주보는데 길이 없고
반대로 도는데 길이 있네
똑똑해도 길을 못찾고
어수룩해도 길을 찾으니
길은 찾는 것이 아니라
때되어 오는 것이지
2021.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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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을 먹고 귀가 뜨이나
두바람이 부딪치는 소리에
소스라치게 깬다
간만에
백두대간 오른 범이
굶주렸던 포효를 하는데
골에서 한기가 더해지니
받들기 힘겹다
전기매트에 붙어
꿈으로 다시 가려고
몇번을 뒤척이고 구르다
어느덧 바람을 세고 있다
쉰여섯? 쉰다섯?
숫자가 엉키고
일순간 휘젓더니
동편으로 멀어지며 뒤도는데
아! 눈물은 이렇게 또 가고
찰나의 미소가 뜨고 있구나
2021.11.22
-------------------
산야가 이토록 빼어나거늘
사람은 왜 가난한가
사방이 도원일진데
사랑없는 눈빛이 흐리다
도무지 정신을 차리려 하여도
사람들의 무례함에
다치고 또 다치니
이제
사람과
멀어져야 할
때가 왔나 보다
선비가 신선이 되려고
산으로 들어간 까닭을
알 듯 하다
두려워도
고독하여도
산이 품었을것이다
나를 받아줄 산은
어드메인가
2021.11.11
----------------
*
단풍이 제철을 넘으면
먼지를 안고 탁해지더라
서둘러 떨어지기를 경쟁할때면
하나둘 태고의 신비가 비치나니
바위가 그러하고 나무가 그러하다
모든 장식을 떨구고
잔가지도 미련없이 내치는
지혜로운 나무를
그 본을 볼수 있으니
수도자를 본듯 반갑고
외롭지 않아 좋다
겨울은 완성의 계절이어라
바람에 의연하려고
짐을 버리고
어느 조건에도 당당하려고
성장을 멈추니
이대로
세상이 멈춘들
무슨 아쉬움이 있으랴
이대로
사라진들
무슨 회한이 있겠나
2021.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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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지고
저 별이
또 같은 자리에 있다
정지상태가 아니고
마치 날개를 펄럭이며 중력을 이기려는 듯
동력이 반짝인다
안부를 묻는건지
데려갈 때를 살피는건지
왜그러는데? 하고 응시하면
슬그머니 피하는 물체
외계인이신지
신이신지
망만 보지말고
나와 담판합시다
무슨 생이 이리 재미 없소
친구는 다 어디로 빼돌리는거요
쓸쓸한 삿대질에
소리없이 또 사라졌다
2021.10.22
------------------
잠시 떠나 있는 동안
그리움에 몸살을 앓았어
낮에서 밤으로 가는 길
아야진에 안겨 있어
어둠이 짙어지면
저 빛이 더 찬란하겠지만
그만큼 고독도 깊어질테니
낮빛이어도 충분하다
이만큼이면 되었다
원대로 하지 않고
멈추었어
그래
이만큼이면 되었어
2021.10.13
[작가노트] 고성 작가노트
9월말 세종갤러리 전시를 준비하며 기록한 작업일지
내가 나를 보고
다른 나가 나를 보고
혼돈의 알갱이들이
빛에 반짝일수록
나는 점점 소진됩니다
무아로 가야할진데
무아가 되어 버리고 있습니다
나는 무엇인가요
나는 또 무엇이 되려 하나요
인연을 이어주시고
인연이 되어 주시는
님들에게 물어 봅니다
2021.9.30
---------------
인생 우여곡절
전생 우여곡절
산따라 강따라
신께로 가는 길
자기를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측은지심으로 잇는 세상
기꺼이 내 깜으로 받아
신이 들어설 그릇이 되는 길
온갖 괄시와 오해를 넘어
무소유를 흉내내나
나를 비워내는 것은
못난 작업만큼이나
끝이 아련한 길
허허 이런 나태함으로
무엇이 될까
202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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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봉산
백두대간의 정기는
작은 평야에서 단절되었다가
갑자기 솟아난 신령이 있어
하늘의 기운을 온전히 받기위해
삼각으로 단촐하게 서 있지
바다로 나간 이들에게
이정표가 되기도 하고
뭍사람들에게 신앙으로 받들어져
고고하게 이어져 왔어
오늘은 예술가의 영을 맑게 하시어
가는 길 살펴 주시러
앞산도 평평하게 준비하여
스스로를 보이시네
202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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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유언대로
병마가 전국을 휩쓸고 말았어
지루한 고립으로 인내가 폭발하고
유난스런 더위까지 부추겨
산으로 계곡으로 바다로
순식간에 흘러넘쳐드네
양양이 닫히니
밀리고 밀려
조용한 고성이 아우성이야
테마파크 산자락에도
낯 선 사람들이 서성대고
한가했던 촌놈의 한걸음앞에
도시의 그림자가 드리우는데
왜이리 낯설까
언제적 산지기라고
이토록 어리숙한 태도로
수줍어 숨고플까
몇달만에 이렇게 변할 수 있다니
거 참
2021.8.3
-------------
2021년 여름은
견뎌내기 어렵네
어지간한 일들을
미리 해두었기 망정이지
호되게 이 계절을 치를 뻔 했어
한낮의 볕에 온 잎새가 고개숙이고
병마는 사람의 온기를 앗아가 버렸어
서로의 안부도 묻지 못할만큼
마음의 단절은 속절없네
이제 어디든
마음 쉴곳은 쉽지 않아
홀로 되는 법을 찾아야 해
홀로 되는 법을 살아야 해
2021.7.31
-----------------
먼지를 관통하여
빛을 보고 있어
잠시
사라질것들에 시달렸지
허나 저 너머
가야 할 길의
그 희미한 시작이
항시 날 붙잡고 있었어
깨어 있어야 해
긴장을 푸는 순간
갇히고 말 테니까
2021.7.9
-------------
근래들어 가장 뜨거운 태양이었어
한낮의 열기에 정면으로 맞서
에너지가 빠져가는것을 보며
작업에 몰두하는것은
참으로 즐거운 일이야
일이 끝나고
여유로운 저녁의 보상이 있기에
2021.7.6
----------------
업을 풀면
보내 주어야 해
억지로 이어가려 하면
구속되기 마련이지
지난 연을 덮다보니
새 판이 만들어져
소중한 연을
맞이하기 위해
마음을 다해
비우고 있어
2021.7.5
-------------
스스로
풀어 내야 해
온전히 고독으로 들어가
어떤 작용도 없이
안으로부터 깨져야 해
그저
부숴지면 좋겠어
어떤 무엇도 되지 말고
2021.7.2
-------------
반복되고
규칙이 만들어지고
원숙해지면
그만 할때가 된거야
그걸 움켜쥐고
이리 돌리고 저리 바꿔봐도
더이상의 교감은 일어나지 않아
이제 이 작업의 기운도 다 된거같아
2021.6.30
---------------
주어진 공간은
축복이었던거야
난 자리
자란 자리는
하늘의 선물이었는데
지식에 현혹되고
다른이의 탄성에 속아
엉뚱한 길을 걸었지
사람들이 외면하는 것에
가야할 길이 숨겨 있었어
진실을 말하는 웅변가는 존재하지 않아
그들은 자기를 따르는 자가 필요할 뿐이야
그렇게 조제된 제도안에서
인간은 도구로 소모될 뿐이지
논쟁따위는 피하는게 좋을거야
누군가의 명분으로 사용될테니
인생의 3막에서
나를 찾아야 할 시간이야
다소 불편할거야
오래도록 맞지 않는 옷에
몸이 맞춰져 있었으니
나라는 신성을 찾아
내안으로의 여행을
이제라도 시작해야겠어
2021.6.27
---------------
어설프게 해서는
역시 안되는거였어
하루종일 매달려
지워내니
이제야 단단한
판이 만들어졌네
서툴렀던 흔적은
조금 남겨 두려고 해
다 덮기에는
한낮의 수고가
아쉬울거 같거든
202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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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이 쌓여
폭발하고
이내
스며든게야
머가 그리
억울해서
아름다워야 할 시간에
시뻘건 낯으로
우는가
산이여 바다여
진정들 하시게
사람에 묶여
돌볼 겨를 없다네
202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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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이 아름다운건
먼지때문이야
근본은 언제나
먼지로 가려지고 지워지고
장막은 빛에 현란하나니
무엇이 진실인고
나를 덮어
나를 묻는데
알 날은 기약없네
202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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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준비가
막바지에 이르렀다
계획했던 일이 마무리가 되면
남은 시간은 덤이 되겠지
나는 이 덤으로 주어지는 시간을 즐긴다
해야한다는 부담없이
여유롭게 흥얼대다가
눈에 걸리는것을 잡아내
살짝 메워나가는
그 자성의 시간이 좋다
지나간 삶도
수정할 수 있다면 좋으련만
언젠가 죽을때
후회하게 될테지
2021.6.18
-------------
홀로
견디기 힘겨워
누군가 필요하다면
아서라
더해질수록
더 외로워질 뿐이다
광활한 자유
숨쉬고 있는 환희
자연과 하나되는 경이
홀로 있다는것은
축복이다
202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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흩어져 있던것들이
모이고 있는가 봐
주변 기운들이 쎄해
햇살은 독을 품어
모든 나약한 것들을 지배해
피할 수 없다면
온전히 받아들여야겠지
독배를 들고 경배해야 해
나아가
웃을 수 있어야겠지
이젠 그만 기다림을 그치고
작은 삶을 살아내야해
젠장
202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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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지가 그랬듯이
햇살이 그랬듯이
형상을 지우고 있어
최근들어 자상하게
반복해서 일러주네
보이지 않는것을
바라보라고
2021.6.9
------------
곡물을 심기 좋은
망종이 지나가
조상의 지혜는
하늘에 닿아있어
절기마다 신명이 오셔서
그 때를 집행하지
추호도 어긋나지 않아
올해는 유독 날씨가 서두른 바람에
해야할 숙제를 채점받는 날이 되었지만
위대한 농부들이 벼를 심으실 때
나는 무엇을 하였누
벼는 정해진 때가 오면
익어서 천하의 복이 되겠지만
내가 한 일은
나의 즐거움만을 위한 것이라고 하기엔
조금 서운하네
때가 되어
한사람쯤 같이 동감했으면 좋겠어
2021.6.5
-----------
마음은 계절을 앞서간다
이미 5월초부터 여름을 느꼈었고
모두가 봄이 절정이라 하였을 때
나는 봄을 보낸지 오래였다
내게서 봄은
겨울의 후미
그러니까 1월 초 고성으로 옮긴 이후 시작되었다
따뜻한 겨울은 내게 충분한 봄이 되어주었다
줄곧 9월에 있는 전시 하나만 생각했었다
돌아보니 무엇을 하였는지 기억이 없고
그저 아쉬움으로 가득하다
그때 봄이 시작할 때 좀 더 집중했어야 하는데
그때 봄이 찬란할 때 좀 더 호흡했어야 하는데
이제 봄은 지나고
여름의 시작에서
벌써 가을을 바라본다
소중한 사람들을 전시에 모시고 싶은데
봄의 시작과 함께 내 안을 들여다보고 끄집어 낸 작업들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하고픈데...
202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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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가고
세대가 가고
몇백년이 지나면
나의 이야기는
무엇이 되어 있을까
일말의 흔적이라도
남아 있기는 할까
살아 있는것
살아 가는것은
무엇을 위한 것인지
숨쉬고 있는 지금
너무 창피하여
고개를 들 수가 없는데
하늘은 무심히도
덩그러니
아름답다
2021.5.28
--------------
저마다
한이 다르고
성격이 다르고
생각이 달라
표현도 다르기 마련
다른것이지
선하거나 악하다고 어찌 평할까
눈물이 내리고
가슴이 먹먹하여
무작정 달렸는데
아! 북천이 위로한다
나는 다행인데
그는 어이할꼬
2021.5.27
------------
두개의 불 위에
상념들이 쌓여간다
어느덧 번뇌는
본질을 덮어 버렸다
허나 소꼬리를 더듬을 수 있다면
능히 불을 밝힐 수 있으리라
2021.5.24
------------
두개의 불은
하나는 살고자 하는 것이고
하나는 죽고자 하는 것이다
죽고자 하는 것은
영원히 살고자 하는 것이니
결코 물러날 수 없는 길이다
나이를 먹어가며
살고자 하는 의지가 커져 가는데
스스로 나약함을 인정하는 것이니
부끄럽고 부끄럽다
어찌하면
멋지게 죽을 수 있는가
2021.5.23
--------------------
사람은
어디까지 품을 수 있을까
좋은연이라 할지라도
항시 좋은 과로 오는것이 아닐진데
기어코 멀어지려는 연에
힘을 쏟아 이어갈 필요는 없을 것이다
허나 천성을 어이하랴
서성이는 연에 모질지 못하여
또 마음을 더하고 있구나
혹여 이번 연이
나를 힘겹게 할지라도
그것은 내 탓이었음을 기억하자
그나마
작업을 핑계로
세상과 잠시 떨어진
이 고립의 시간이
얼마나 다행스러운가
202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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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가루는
산을 발라
명도단계로 나누고
벼들은 물을 품어
산을 드리우나니
사람의 흔적이
참으로 초라하다
2021.5.17
----------------
산속 깊은 곳
멍때리다 작업하다
속절없이 시간을 지워가다
비라도 오시는 날이면
불현듯 스치는 도시의 비린내
도대체 무엇 때문에
그리도 아파했었나
돈도 명예도 바라지 않았는데
집착이었나
아련한 추억끝에 묻은
이 설움은 뭘까
네온불 가운데서
짐승처럼 울부짖던
젊은날의 불쌍한 나
비속에서 왜그리 울고
좁은 골목길에 들어서서
머한다고 헤매였을까
누구때문인지 무슨일인지
잊혀진 기억에서
가슴이 쓰려오는건 왜인가
아마도 그때
위로받지 못했나 보다
많은 시간이 쌓이고
잠겨있던 상처
하나씩 불러내어
치유해야겠다
나를 안아줘야겠다
오늘처럼
툭툭
비라도 오시면
2021.5.16
--------------
기억을 더듬어 그리는 것은
생동감을 중시하는 내게 걸맞지 않아
지난 봄의 풍경을 하나 더 그리려 했지만
몇일째 맘이 동하지 않아
시간이 갈수록 지난 감동은 희미해지고
그려야겠다는 생각도 옅어지네
맘을 돌려
오늘부터 하늘을 담고 있어
변화된 산에 어울리는 하늘을 찾고 있어
감정이 쌓여
밀려 나올 때까지
지루한 관찰을 지속하려 해
2021.5.13
-------------
봄이 익어가
나른하고 무료해
어릴적 어느 오후
담장아래 포근한 햇살
근거없는 환희
오늘같은 날이었어
세상밖을 모르던
그때
덜자란 신경들이
빛에 따라 요동쳤어
왜 살아 있는지 모르고
알아야 할 이유도 묻지않는
백지같은 순수
이번생에
다시 올 수 있을까
202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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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넘어
유토피아가 있긴 있는가
질척이는 길을 짚어
우직히 가다보면
내가
우리가
바라는 세계로
다가갈 수는 있나
사람은 때로
길도 되고
벽도 되나니
어느 인연을 쥐고
가야 옳을까
성심 하나로는
도대체 안되는가
어쩌면
한 생으로 그치는
그저 그런 생일진데
큰 착각으로
바보같이 사는건 아닐지
비도 오지 않는데
비로 흠뻑 젖어
너덜너덜
해진 맘을
쓸고 있다
202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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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은 파래서
아래로 흐르고
사람은 따뜻해
위로 오르지
숙명으로 마주보고
때되면 만나지는데
왜 그리 재촉하여
먼저 가려는지
20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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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지의 겉으로만 머물던 물이
높이 솟구치는 이유가 있지
깊은잠에 빠진 기운을 일깨워
나무를 관통하여 위로 올리려는거야
땅속을 깨우려면
단단한 표피를 뚫어야 하고
그러려면 더 높이 오를 수 밖에
땅이 경계를 풀면
모든게 순조로와져
근원으로
더 깊숙이 파고 들어가
하늘로 올려질 거룩함을 찾는
나무는
하늘의 메신저야
202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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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오신다
대지는 나와 함께 적셔져
다음 계절을 빚겠지
봄은 가버렸나봐
난생 처음 발견한
새순의 경이는
이제 더듬기 어려워
오늘
여름의 시작을 보았어
물로 가득한 하늘로 솟는
청색과 갈색을 품은 풀색
곧 부서질 듯 여린
봄에 비한다면야
얼마나 선명해
비를 안을 때마다
한껏 성숙해지고
태양의 포악으로
지고야 말겠지만
아! 오늘은
비와 논다
202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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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같은 지혜를 달라고
간절히 빌었었다
젊은날 각성하여
물욕은 일찌감치 피할 수 있었고
인연에 대한 애착은
나를 끊임없이 단련시켰다
덤으로 살기 시작한 어느날
난 간절히 빌었다
샘같은 지혜를 주소서
아마게돈 시대에
반드시 필요한 수단이었다
작가로 서는
원 하나를 풀었으니
조금 더 큰 소망을 가지려 한다
하나가 아니고 여럿이요
자유분방한 예술가를 향한 구애는
그 과정으로 의미를 가지리라
202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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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두려워
경계를 치나
이해는 하네
지킬것이 있겠지
나는 가진게 없어서
경계가 무언지 모르고
별거 없으니 다 드러낸다네
한없이 여린 속내를
험악한 얼굴이 지켜주니
얼마나 기막힌 복인지
헌데 그거 아나
가진게 없으면
때때로
세상을 품을 수 있다네
몇가지 불편할 뿐
큰 불만은 없네
202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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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은
쓸어내려
맹렬히 할퀴고
나무가
의연히 감내하는건
곧 지날것을 아는 까닭이다
202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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잎은
자라는것이 아니야
태양을 안으로 품어
숙성하는거야
장엄한
한 순간을 위해
때를 기다리는거야
저것봐
바람을 가르며
살아갈 공간을 만들고 있자나
202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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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은
봄에서 여름으로
소리없이 이어진다
가는봄이 아쉽지 않음은
덥지 않은 여름을 기대해서다
여름을 피해 내게 오실
벗을 맞이하려면
일을 서둘러야 한다
아무래도 올해는
여름으로 가는 길목을
살피지 못하리라
202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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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봄은 잊지 못할거야
애잔했던 겨울을 보상하려
어수선함 부랴부랴 치우고
봄앞에 턱을 괴고 앉았드랬어
봄이 이토록 탐스런지
여태 몰랐었네
그럴수밖에
찬란한 봄은 찰나로 스치는데
지켜서지 않으면 보기 힘들더라고
매시각 옷을 바꾸는 산수를
오감을 세워 가슴으로 담고
그대로 화판에 옮겼어
조금후엔 부서질 손안의 풍경
그리고 그렸어
초록이 짙어지기 전
가시는 봄 끝자락을 잡고
마저 그릴 그림이 있어
더디어진 감동만큼 느린 템포로
다시오지 않을 봄을
202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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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화가가 말했다
회화는 우주를 표현할 수 있다고
수많은 선을 그어 대며
어렴풋이 그의 말에 수긍이 간다
피규어 입체작업을 할때는
매번 생명체 하나를 잉태하는 과정이었다
기초프레임 작업은 골격을 만드는 것이었고
셀이라 칭한 작은 모듈들은 근육과 혈관을 대체하였다
눈을 대체할 오브제가 마땅치 않으면 작업을 진행할 수 없었다.커터칼을 다루기에 작업하는 매순간 극도로 긴장해야 했고 적지않은 에너지가 소비되었다
생명깃든 조각품들은 나의 수명과 맞바꾼 처절하고 장엄한 독립체이다
회화는 많이 다르다
우선 하나의 작업으로 그치지 않고 연속성을 가지고
다음 작업으로 넘어가는 것이 좋다
그렇게 여러점이 쌓이니 어떤 세계관이 보이는데,다음 과정에서 담아야 할것이 저절로 제시되어 또 좋다
작업중에는 에너지가 충전되는 기쁨이 있다
문득 즐거움에 미소짓기도 하고 흥얼흥얼 노래가 절로 나오기도 한다
전체적인 구상에 천착하기보다 마음가는대로 끌어 가니 무엇이 될지 모르는 설레임과 자유로움이 있다
그 화가의 말이 맞다
작은 평면안에서 잠시 우주를 꿈꿀 수 있다
물론 펼쳐진 세계가 다 흡족하지 않다
되도록 가필없이 작업을 끝내려 하고
괜찮은 작업이 몇점 나오고 있기에
당분간 이 방식을 가져가려 한다
202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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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돈이 되면
그래서 완성도가 높아지면
깊어지고 편안해지면
이내 생동감은 약화된다
모름지기 새로운 시도가 있을때
재료가 구상이 철학이
덜 익은 상태에서
생동감은 발현되나니
항상 예민한 감성을 유지하고
기꺼이 모서리에 비틀거리며 서야하며
균형을 무너뜨리는것이 관건이다
202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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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밝아진건가
앞산 나무 새순이 보이네
품안거리에서도 느낀 기억 없는데
작업대옆 스투키마냥 선명해
어제아침엔 미동도 없어 신기했는데
오늘은 살랑살랑
봄처녀같다 하는것이 저런건가봐
바람한번 더할때마다
초록이 덧칠해지네
놀라며 나온 새순의 경이가
아직도 눈가에 어른대
사람이 봄에 감격하는게
그저 추임새려니 했지
내맘을 송두리채 빼앗길줄
우째 알았겠노
꽃소식으로 온사방이 난리인데
오늘 내맘을 들었다 논건
꽃보다 잎이야
조금더 오래 갈줄 믿으니까
202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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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를 시샘하는걸
저 구름은 알까
대지의 일에는 초연하고
드높은 곳에서 유유자적하네
바람소리
닿지 않는곳에서
찬란한 빛을 머금고
내 처지를 비웃고 있구나
그래
너였으면 해
생각도 의지도 없이
모습으로서 아름다운 이
그려낼 수 없는 색
가늠할 수 없는 형으로
단 한시간만 존재하고
사라져도 아무도 모르는
그대이면 참 좋겠어
202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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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는 해는
자연의 세세한 면들을
선명하게 드러내지
로댕이 지는 해를 이용해
마무리 작업을 하였다는것은
잘 알려져 있어
태양이 높고 너무 밝으면
사물은 디테일을 감추어 버려
큰 면들만 드러나는 세상은
너무 단조롭고 지루하지
생의 끝으로 달려가는 빛이라야
멋들어진 세상을 열 수 있어
생도 마찬가지야
언제 질것인지 알 수 없지만
무르익은 정신은 느낄 수 있어
한낮의 열정이 가라앉은 후에야
삶의 행적 곳곳에 박힌
흔적들을 이해할 수 있을게야
허나
혜안이 어느정도 열렸다 해도
다른이의 마음은 알기 어려워
내맘 같다고 생각하다가도
다른맘을 발견할 때가 많아
내가 아직 순진한건가 자책하다가도
억울한 맘이 들때가 많아
사람이 참 어려워
나이를 먹을수록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이
너무 힘겨워
그냥 고독에 익숙해진 지금으로
조용히 작업이나 하며 살려고 해
더이상 오지랖은 없을거 같아
202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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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위로 섰느냐
하늘위로 섰느냐
본래 저들은 그곳에 있었거늘
어디로서서 모양을 다투는가
거참
답답하다
물에게 왜 흐르느냐 닥달하면
거꾸로라도 흘러갈 줄 아는가
가장 낮은곳까지 흐르고 나서야
치솟는다는걸 왜 모르는가
산이 물이되고
물이 바다가 되고
다시 바다가 산이 되나니
누가 있어
역행할까
202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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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이어도 좋고
아니어도 좋소
나무여도 꽃이어도 좋고
아니어도 더 좋소
익숙한것이라도 좋고
별다르면 더 좋다마다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으니
틀린것이라고만 하지 마소
어디로 가는지
나도 모르고 너도 모를진데
지금 있는 자리로 머라하지 마소
한가지 바램이라면
백두대간에서 동해로 흐르는
바람이어라
운무여라
나 아닌 무엇이어라
202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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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동 시절 2019년 12월경
"제한적자유"라는 이야기에 걸맞는 재료를 찾기위해
을지로를 수도없이 탐색했고
재료의 방향을 정한 뒤로는
문명의 이기 당근마켓을 통해 수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재료에 사람의 삶이 묻어 있다고 믿었고
사용하던 재료를 건네받으면
그 사람들의 이야기와 기억들이 사라질까
서둘러 작업실에 돌아와 작업에 돌입했었다
재료를 몇가지의 형태와 색으로 제한하여 가장 처음 놓는 두세개의 돌을 결정해주면 다음 과정은 재료가 이끄는대로 전개됨으로서 작가는 무의식의 영역으로 들어서며 자유로워진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도시는 그 작업이 가능하도록
물질을 지속적으로 제공해주었다
실험적인 오브제작업은 2020년 2월 목포 성옥문화재단에서,조형적 완성도가 진전된 오브제작업은 2020년 12월 인사동 토포하우스에서 각각 전시되었다
"제한적자유"라는 주제로 연 두번의 전시는 코로나의 여파로 목포는 전시마감 몇일앞두고 막을 내렸고,인사동은 단계조치 상향으로 관람객이 뚝 끊기는 그야말로 제한적 자유 상황을 고스란히 감당해야했다
도시가 싫어져 백두대간 안으로 왔다
자연 한복판에서 인공물질을 구하기도 어렵거니와
구지 어렵게 구한다 할지라도
주변공간의 기류와 너무 상이하여
한동안 작업방향을 재설정하는 고민을 하였다
"숨쉬는 공간에 걸맞는 작업을 하리라"
오랜 생각끝에
인공재료를 버려야 한다는 생각에 도달하였다
이제 내게 주어진것은 몇가지 물감과 레진이 전부였고 그것에 몰입하여 몇일간 작업하다보니 물질을 가지고 설명하려했던 "제한적"이라는 의미는 희미해지고 곧바로 무아를 표현할 수 있겠다는 가능성에 이르렀다
그간 어쩌면 불필요한 단계를 수행하기 위해
많은 시간을 재료준비에 허비하였다는
생각이 떨쳐지지 않는다
사람이 우매하니 겪어보고서야 깨닫는 것이리라
이제 이전보다 더 간소해진 재료앞에 섰다
이야기도 더욱 간단해졌다
"무아"
하지만 이 경지는 흉내로 갈 수 있는것이 아니니
다시 수도는 시작되었다
202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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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바람소리로 잠이 깨었어
보통은 들어오시면
두어바퀴 맴돌다가
머라하고 가시는데
머가 그리 급하신지
주변도 살피지 않고
먼바다로 바삐 가시네
덩치가 큰거같고
가까이서 시작한것이 아닌거 같아
이상하다
바람의 형상이 느껴져
너무 이상해
내가 나인거 같지 않아
오늘 중요한 손님들이 오시기로 했는데
이른 아침부터
나에서 다른걸 보고
바람을 읽고 있으니
살아간다는것이
나를 잊어가는것 같아
202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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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속초에 사시는 페친이 찾아 오셨다
스튜디오에서 우엉차 한잔하며 첫만남의 경계를 풀고
피움테마파크 이곳저곳을 안내하였다.
피움카페에서 이대표님과 잠시 세상이야기를 나누고
전번도 교환하였다.
그렇게 과거 프로골퍼였던 최프로와의 하루가 시작되었다. 난생처음 섭국을 먹고 속초해수욕장도 처음 가보았다.최프로는 내 연속되는 첫경험에 고무되었는지,이때부터 갑작스런 속초투어가 시작되었다.
몇군데 전망좋은 호텔주변과 로비를 둘러보고,시예산이 많이 들어갔다는 청년몰,칠성조선소 등등 나는 처음보는 풍경에 연신 탄성이 절로 나왔다.투어의 하이라이트는 척산온천이었다.온천주변의 잘 꾸며진 정원 이곳 저곳에 조각작품 하나씩 떠올려보고,노천탕에서 일본의 온천문화와,어머니의 전성기시절,놀라운 일본태생의 비밀,이야기는 끝도없이 이어졌다.둘다 웃을 수 밖에 없었다.첫대면에 이게 가능한 일인지..허허~투어의 최종코스는 청초호옆 삼겹살집이었다.가끔 찾아오는 아들과 이용하는 곳이라고 하여 더 따뜻한 느낌을 받았다.
최프로의 삶은 하루종일 본 풍경보다 특별하였다
서로의 성격이 어떤부분은 매우 가까웠고,또 매우 상이하였다.호기심많고 모험을 좋아하는 새친구와의 풍성한 이야기는 늦은 저녁까지 이어졌다.
평소 이미 잠자리에 들 시간에 나는 한사람의 인생을 여행하고 있었다.
첫만남에 우리는 친구가 되었다
일방적으로 얻어먹어 미안해하는 내게 친구는 섬세한배려를 해주었다.
전혀 다른 삶을 산 남자들이 홀로 지낸다는 이유로 하루사이에 만리장성을 쌓았다.
아! 언제든 밥한끼 같이 할 친구가 15분거리에서 산다
살다보니 이런 좋은날도 있구나
참으로 감사한 하루다
202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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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고마운 사람을 만났다
일찌감치 페친이었던 분이라 새삼 시대를 실감했다
예술을 이해하려고 귀기울여 주는 사람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
예술가를 존중하는 사람
그 사람과라면
못마시는 막걸리한잔 걸치고
고공밧줄위 겁없이 춤이라도 추고
익지않은 삶과 예술로 논쟁하며
긴밤 너끈히 지새울 수 있을게다
예술경영은
철저한 기획에서 시작되겠지만
그것이 즐거운 행보가 되기 위해서는
예술가와 그 스토리에 집중해야 한다
탄생된 작품에는
생의 단편으로서 깨달음이 담겨야한다.
예술은 이야기이다
이것에 공감하고 실천하기로 약조하니
아! 새 희망은
존경하는 예술가에게 전해져
즐거운 잔치하나 열리리라
202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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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은 해를 막아
자신을 바위에 새겼다
인수봉 선명한 기개를 시샘하여
태고부터 자리한 영웅을 지우고 있다
후미진곳 항상으로 드리운
뒷골목 응달에
구름은 관심이 없다
아무도 눈길 주지않는
풀옆에 쭈구리고 앉았다
역사의 풍파를 오롯이 견딘
바위를 바라보며
작은 담요속에 숨어있다
아주 잠시
담요는 구름이 되고
나는 바위가 된다
202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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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던일을 팽개치고
고성으로 날아왔다
눈덮힌 산이 따스하여 눈가를 적신다
역시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일은 하지 말아야 했다
지인들에게 간곡히 당부드린다
절대로 인연을 연결하지 마시라
다시 생각하고 다시 생각하고 다시 생각하고 그치시라
인연은 전생의 업과 인과로 이뤄지나니
억지로 맺어진 인연에서
남는것은 원뿐이요 필히 하나이상을 잃을것이다
인연은 하늘의 법이니
어찌 한낱 인간이 주관할까
사람은 마주 서면 싸우게 되어 있다
애끓는 사랑조차
긴 전쟁의 서막일 뿐이다
하물며 삼자가 만나 무슨 평화를 바라나
삼인이 만나면 나라도 세운다고 하였는데
그 나라라는것이 제도라는것이 도대체 누구를 위하는 것인가
나의 나라는 있어도 너의 나라는 없다
타인을 위한 절대사랑은 제도권 안이 아닌
판밖에서 대부분 이루어졌다
친구들이여
감히 다른이를 위한다고 말하지 말자
자기도 모르면서
타인을 어찌 아나
그대앞에 서 있는 자
사랑을 나눌자가 아니라
그저 전생의 빚을 풀어야 할 자다
오늘 밤 많이 아플것 같다
2021.3.4
---------------
서로 일을하면
부딪칠 수 밖에
잘하려고 할수록 더 충돌한다
그냥 대충하고
자기것을 챙겨가려는 자는
충돌을 피할테지
잘하려 할 필요도 없고
대강 타인의 말을 따라 맞춘다
속인들은 이런자를 좋은사람이라 하지
빌어먹을 이기주의자들
바보같은 심안을 가진자들
이것이 세상이다
평생을 잘하려고 하였다
많이 충돌했다
이제는 부딪치고 싶지않다
그래서 생각했다
일을 하지 말자
그냥 놀자
그러면 흘러갈 수 있으려니
202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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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사는가
한보를 내딛기 위해
열정을 팔아 돈을 산다
내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건데
이리 허비하여 어쩔거나
공덕을 위한것이 아닌데
몇가지 소유를 위한 것일진데
대체 나는 무얼하나
나더러
무엇이 되고 싶냐 묻거든
그저 의미를 시작하는 점이고 싶소
때가 오면
나도 버리고
아무것도 아니고 싶소
202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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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원에서 점과선을 이용하여 면분할을 시도하다 보면,그 자유로운 전개에 순간순간 희열을 느낀다.
입체를 다룰때는 평면적인 구성과 더불어 그것이 공간에서 어떤 기울기와,깊이로 서는것까지 고려해야해서,본질적으로 공간이 지향하는 바에 지배를 받게되고,그만큼 작업이 경직되고,작가는 위축된다.
자유롭고자 하는 작가의 의지와,공간으로 지향할 조화성이 팽팽하게 맞서는 것이다.그것이 필요든,우연이든 잘 기획되어진 덩어리들이 제대로 맞아 떨어지며,작업은 깊이와 조형성을 획득하게 되나,웬지 모르는 기계적이고 도식적인 갑갑함에서 헤어나기 힘들다.
그러나 평면작업은 배후의 구조가 없으므로,보이는 면 하나에 집중하게 되고,매우 자유스런 면분할을 가능하게 해준다.평면작업의 이 유희적 요소는 순간적이고 지속적인 집중을 가능하게 하여 작업의 속도도 매우 빠르게 전개된다.
내 작업의 특성상 한번 고정하면 떼기가 어려우므로 거의 즉흥적으로 연출이 되는데,최선의 조화로운 면분할이 되었느냐 묻는다면 매번 만족스런 결과가 만들어졌다고 장담할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을 대폭적으로 감안한다 할지라도,작업중에 느끼는 자유로움을 느끼는것으로 지금의 작업은 충분히 흡족하다.
나의 즐거움을 위한 작업
그것이 최선임을 나는 알아가고 있고,
작업으로 지치지 않는 이유이다.
202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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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만인가
앞동에 입주해있는 김작가가 오랜만에 왔다.
바로 옆동 이작가께서 공공프로젝트사업차 올라가신지 한참이라 홀로 보내는 시간이 길어져 다소 지쳐있을 때 반가운 친구가 온것이다.
어제는 솜씨없는 떡뽁이를 나눠먹고,오늘은 속초시내에서 맛난우동도 먹고,간만에 청초호 정자도 찾았다.
하루를 설렁설렁 이런저런 애기하며 보내다보니 문득
누군가 곁에 있다는게 이리 좋은것인지 새삼 깨닫는다.
나이를 먹을수록 혼자 사색하는 시간이 익숙해진다.좀더 깊게 사색하기위해 일정한 몰입의 시간이 필요한데,아무 방해를 받지 않고 몇일동안을 혼자 지내다 보면 이런 과정이 너무도 자연스레 일어나기 때문에 별다른 형식도 필요가 없게된다.
그러나 나는 수행을 목적하지 않는 일개 사람이기에 매번 이런 구도자같은 생활을 반복하며 살아가기 힘들다.작업활동이 목적에서 놀이로 전환되고부터 이런 증상이 좀더 심해진것 같다.(전에 작업이 목적일때는 손님을 앉혀놓고 일했었다.가시는줄도 모르고~)
몇일간 상당한 집중력으로 간단하게? 작업을 끝내고 깊은 사색의 경지로 들어가기를 잘 반복하다가도 갑작스런 헛헛함에 어쩔줄 모르는 어린아이같이 된다. 만일 이때에 누가 불편한 심기라도 건드린다면 필경 폭발할 수 밖에 없을것이다.
이럴때 친구처럼 좋은것은 없다.
자연친구말고 수다를 떨 수 있는 사람친구 말이다.
아따!! 오늘 구름 멋들어지네~~^^
202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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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의 주인은
사람도 아니고
바위도 아니고
계곡도 평원도 아니고
파도도 아니었어
그것은 바람이었어
몇일째 쉬지않고 주장하시네
당신이 이곳의 임자라고
덕분에 오늘밤도 뒤척이겠지
어지간하면 차 한잔 하자할텐데
매몰찬데다가 거칠어
말도 못꺼낼 지경이야
그저 들락날락
눈치나 보며 커텐틈으로 힐끗거릴뿐
대책없이 서성대고 있어
도시의 아귀에게서 도망왔더니
이건 머 감당안되는 체급일쎄
이렇게 몇날을 원껏 푸시고
자비로 살살 다뤄 줄라는지
친해지는 수 밖에
이곳에서 살려면 말이야
아니면 내가 자연이 되던지
202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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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짧은
미처 준비되지 않은 사이로
님이 다녀가셨나봐
여독도 풀리지 않은 몸뚱아리
새벽까지 사용하시고
설잠과 기다림에 지친 영을
이리저리 휘두르시더니
이제사 겨우 나를 찾아 다지려는데
바람으로 일으킨 상념이
온마음에 박힌다
내가 하는 일이 아님을 다시 깨우치사
또 무엇을 하시려는겐지
어디로 행할지 막막하여
파도가 나를 넘도록 보고만 있다
아는 조각조각 찢겨지고
갈수록 의지는 소실되어가니
무엇을 하여야 하나
무엇이 되어야 하나
천지신명이여
202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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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저런 물질을 섞어
생산된 에너지를
적당한 위치에서 낙하시키면
지면이 수용하는 범위에서
고이고 이내 넘쳐
아래로 흘러든다
경계를 넘어선다 싶을 때
아래를 위로 전환시킨다
전진했던 반대방향으로 몰아 세우고
과도하게 넘친 흔적들을 닦아낸다
시간차를 두고 떨어뜨린 물질들이
제멋대로 넘실대고 섞이고
조정하는 돌언저리를 부지런히 채워간다
밀고당기며 자기의 위치를 찾아가는 물질들
최초에 던져진 에너지와
절대수평에서 미세하게 기울어진 판이
저절로 작업을 만들어내는 동안
그저 바라보며 기다릴 뿐
내 의지는 그다지 필요없다
202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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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점을 인지한다
점을 연결하여 선을 이루고
선이 모여 판을 이룬다
이때 여백은 우연으로 채워지고
음양,안밖,고저등이 충돌하여 판을 이룬다.
공부를 많이 한다하여 더욱 짜임새있는 판을 이루는것은 아니다
내가 반을 이루고 반은 신명이 하는 일이다
그 반은 50%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다가갈 최고의 상태를 말한다
간절함에 간절함을 더하는것이며
다했다 했을 때 하나를 더 얹는것이다
어떤이는 평생을 하여도 못 이루는것을
어떤이는 몇일사이에 이루나니
그것은 기도의 크기때문이다
신명은 사람의 기도를 들을 준비가 되어 있나니
되지않거든
그대의 부족을 탓하고
그대의 잘못된 기도를 탓하라
그리하여 나는 오직 한가지를 간구한다
샘같은 지혜를 달라고...
202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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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오신다고 하였다
아! 오늘은 아무것도 하지말고
오직 비하고만 놀자
주섬주섬 축축한것들을 난로위로 모으고
커텐을 조금더 걷어 비를 담을 문을 열었다가
눈으론 믿기 어려워
첫망울을 닿아내려고
발코니로 나가 턱괴고 기다리는데
아! 내맘을 들켜버렸나?
내가 분주하게 그랬던것처럼
분위기만 열심히 지어내더니
끝내 그대로 멈추는게 아닌가
딴청을 하는 사이 오실까하여
피움아트에 마실가서도
비는 당신을 보이지 않으셨다
종일토록 이어진 아쉬움을 달래려
김윤아의 야상곡을 듣는데
거짓말처럼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
반가운 님이 앞에서서 함박 웃는다
202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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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백두대간
사람빛 기척없이 하늘빛 찬란한 밤 언덕
용바람 치고돌아 바위들과 힘겨룰 때
컴컴한 숲속에 번득이는 눈빛이 있다
도시 한 복판 수 많은 사람사이
고독으로 몸서리쳤거늘
고립깊은곳 야생의 언저리
무심코 뒤척이다
이상하다
지루하기는 커녕 왜이리 평온한가
코끝을 살랑이는 한기도 사랑스러워
이대로 거뜬히 밤을 새도 좋으리라
20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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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잊기 위해
눈을 감고 숨을 멈춘다
바람소리를 깨닫는 순간
곧바로 심장으로 달려오더니
이내 관통하여 기둥 모서리로 휘감아 돈다
백두대간에서 오는것이 아니니
동해의 줄기일것이다
봄을 나르는 전령사의 입김에
하나로 화답하나니
혼돈의 겨울은 위세를 다하고
아! 이제 약속된 순은 필것이다
2021.2.1
[작가노트] 예술과 커뮤니케이션
예술과 커뮤니케이션
인간이 한번도 겪어보지 못한 언택트시대에 예술가들은 어떻게 세상과 소통하여야 할까요?
과거 인간은 일정한 인구와 제한된 거리에서 문명을 꽃피웠고 유수한 선문물이 다른 지역으로 전달되고 정착하는데 수세대의 시간이 필요했습니다.수천년간 인간과 자연은 공존하였고,그것은 각자 일정한 거리를 유지했기 때문이었습니다.근 40여년동안 도시는 거대해지고 모든 문명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였고,인간은 도시를 통해서만 그들의 가치를 실현할 수 있다고 믿게 되었습니다.굳이 바이러스가 아닐지라도 기후와 환경의 폐해가 극에 달해 스스로 무너질 위기에 있었고,바이러스는 그 때를 앞당기고 경종을 울리는 역할을 했을뿐입니다. 거의 대부분의 사회적 기능이 위축되었고,특히 서로 대면해야 가능했던 문화예술계의 행사들은 전면 중단되었습니다.
이제 몇몇 뜻을 같이하는 예술가들이 모여 이 시대에 정면으로 맞섰습니다.우리는 다양한 컨텐츠로 소수와의 제한적 교류를 통하여 이 위기를 극복하려 합니다. 오픈스튜디오,도슨트,작가와의 대화,체험학습등의 다채로운 프로그램과 예술감흥을 소수의 제한된 관람객들과 지속적으로 공유하려합니다.
예술을 위한 예술이 색을 바랜지 오래전이고,교류하지 못하는 예술은 이 시대에 존재하기 어렵다는것을 압니다.시대의 가치에 편승하여 거창하게 부르짖지 않고,살아남아야 소통할 수 있다는 절박함으로 임하려합니다.우리 소수의 예술가들은 각자의 예술철학을 다듬는 일에 게을리하지 않음은 물론,그 장을 열어준 고성과 피움의 발전에 기여하고,지역의 문화부흥을 위해 앞장설 것입니다.
한분의 관람객을 위하여 마음을 다하고,그 한분이 다시 찾을 수 있는 가치를 만들어 보려 합니다.
문화의 작은 씨앗을 이곳 고성에서 틔워 보려 합니다.
[작가노트] 제한적자유-인연
불가에서는 인연을 전생의 연으로 푼다.
전생의 관계는 빚으로 귀결되어 그것의 양에 따라 이생의 관계맺음이 일정부분 정해진다.
예컨데 가장 큰 빚은 자식으로 와서 평생을 주면서도 아깝지 않으니 이것은 자기의 빚을 갚는 것이며, 길을 가다가 미친자로부터 따귀한대를 맞았는데,이는 필경 그자의 빚을 내게서 받아간 것이리라.
날때부터 이어져온 빚관계 업보,나도 모르게 남에게 하였던 일들이 준비되지 않은 때에 되돌아오고,피하면 눈덩이처럼 커져서 필경 맞이하게 되나니,정면으로 맞서서 돌파할 방법밖에...생은 그래서 자유의지가 제한적일 수 밖에 없고,빚을 갚은만큼의 자유를 허락받게 된다.
내 작업에서 오브제를 몇가지 형태와 색으로 제한하여,그 형태가 최초로 만나는 지점을 결정해 주면,나머지는 나의 의지가 아닌 재료가 원하는대로 이끌려 가게 된다.몇가지의 재료로 제한한 덕에 재료의 속성에 집중하다 보면,내 의지는 순간 해방되어 공중에 떠 있는 느낌을 갖는다.
이 부유함을 갖는동안 난 세상의 시름을 잊는데,스트레스에서 벗어난 나의 뇌는 불필요한것들을 지우고,얽혀있는 것을 풀어 재정비된다. 이것은 자유의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놀라운 선물같은 것이다. 자유의 정수를 가늠할 수 없지만,그 세계의 공기를 잠시 느낄 수 있는 시간이다.
내 작업은 결과를 만드는 것도, 무엇을 드러내는 것도 아니며, 행위의 과정에 의미를 두는 것이다.재료가 결정되는 순간 또 하나의 자유구현의 가능성에 들뜨는 마음을 감출 수 없다.한걸음 한걸음 더디지만 자유의지로 다가가는 것일까...재료를 찾는일이 만만치 않은데,사람들의 삶과 기억에 기인하는 것이야말로 내 작업의 이야기를 풍성하게 만들어 주기에,다른 이가 사용하였던 오브제를 고집하고 있다.각각의 작은 오브제로 대변되는 사람들은 우연인듯 필연으로 만나 저마다의 얽힌 고리를 풀고,점차로 공중으로 부유한다.자유의지는 자가발전처럼 어느새 일어나,새 희망앞에 당당히 선다.
제한적자유-인연
세상일이 뜻대로 될거 같지요
소소한 주변일에 많이 피로한가요
마음 쓰고 마음 다치는 일을 반복하지는 않나요
세상의 작은 입자들이 뭉치고 흩어지고
마음없는 곳에서 바람이 일고 또 서고
그대여 아무 걱정하지 말아요
그대에게 정녕 아무런 의무가 없어요
그저 태생으로 주어진 연을 바라보세요
내가 주어야 되는지 받아야 되는지
어느정도 열정을 얼마간 살라야 하는지
연이 다하면 마음의 빚도 사라질거에요
그러면 다시 다른 연으로 여행할테지요
그렇게 그렇게 비워지고 비워내어
언젠가 가뿐하게 뛰놀 수 있겠지요
한바탕 놀고가기 얼마나 좋아요
얼마나 괜찮은 세상이에요
제한적인 자유로 인연으로
[작가노트] 제한적자유-MYSIGNAL
MYSIGNAL
각자마다 싸인을 가지고 살아가
어떤이는 선대로부터 물려받았고
어떤이는 숱한 세월에서 터득했으며
어떤이는 가짜로 포장하여 두르고 있고
또 어떤이는 아에 모르고 살아가
그들 중 몇몇은 우주의 파동과 같은것을 지녔어
그들은 함부로 이기의 삶을 살 수 없나니
연결된 신호들이 줄곧 인도하여
질척대는 삶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깨닫게 하여
영원한 존재의 향방을 가리켜
싸인은 거부할 수 없는 숙명이야
My Signal...My Signal
[작가노트] Beyond the world
Beyond the world
아우성치는 세상.
저마다 이기로 무장하고,
자기편의대로의 논리를 편다.
상대를 이해하려 들지 않고,겨우 얻은 경험으로 관조하려드니 협의와 화합은 커녕 참담한 단절만 늘어난다.
곧 주먹이 오고 갈 판이어서 인내에 인내를 거듭한다.
이쪽세계와 저쪽세계의 경계는 본래 없는 것이었다.
잘 살기 위하여라는 적극적 의지로 경계를 긋고 벽을 세우며 그안에 작은 천국을 만들어 숨어 지낸다.
사람들은 갇히기 위해 열정 가득한 지난날을 허비했다.
견고하게 갇히면 성공,그렇지않으면 실패...
신으로부터 독립한 한가지 이유는 자유를 얻으려 한 것이었는데 겨우 100여평공간에 스스로 갇히는 선택을 한다.
세계는 각박한 마음을 잉태하려고 경계를 강화한다.
대체 무엇으로 이 담장을 허물 수 있으며 무엇으로 장치하여 저 세상으로 나아갈까..
[작가노트] KALI
KALI
패키지박스 디자인은 상업적 목적으로 신중하게 제작되어,구매자에게 제품이 도달되는 순간 그 기능이 다하여 버려진다. 이 재료에는 시대를 반영한 많은 이야기가 담겨있는데,나는 이것을 고르고 자르고 붙여 최소단위인 Cell을 만들었다. 각각 다른 형태,크기,칼라를 가진 이 작은 덩어리가 내 모든 작업의 기본재료가 된다.
패키지박스 디자인의 부분컷팅으로 획득한 우연적 성과물인 Cell을 엇박자로 쌓아서 매스를 부숴가는 방식과,원칙없는 칼라의 조합을 통해 모호함을 지향하는 "불확실성"을 표현하고자 하였다. 모든 명료한 규칙은 확장하려는 자유를 구속하며,작업의 지향점이 구체화될수록 창조적 유연성이 위축됨을 느낀다.그런 연유로 나는 스케치를 하지 않으며 머리속에서 그린 상을 토대로 모든 과정을 우연적으로 획득하고 감각적으로 전개한다. 더 이상 더할것이 없을 때에 작업은 끝이 나는데,이것도 반복적으로 하다보면 규칙이 생겨나고,너무 익숙해지면 흥미가 사라져 이내 다른 방식을 찾아야 한다.
[평론] 규격, 제한적 자유, 그리고 탈영토화
규격, 제한적 자유, 그리고 탈영토화
- 조창환의 조형작업
서길헌(미술비평, 조형예술학박사)
한때 인류는 열심히 세계의 속살을 파헤치고 사물의 얼개를 해독하여 이를 바탕으로 문명의 금자탑을 쌓아 올렸다. 문명은 점점 분화하였다. 본다는 행위도 그만큼 세분화되었다. 한동안 미술은 절대주의나 미니멀리즘이라는 비좁은 영역으로 축소되고 점점 더 막다른 골목으로 퇴행하였다. 이후로 그것은 신표현주의와 포스트모더니즘, 또는 해체주의의 회생경로를 거치면서 규율에서 풀려나 다시 잡다한 이야기로 재발화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다시 규범의 돌쩌귀에서 풀려난 미술은 이전의 아날로그적 자유를 망실하는 대신에 디지털적 규격이 허용하는 만능통로의 열쇠를 얻었다. 디지털은 모든 것을 이진법으로 여과하여 접촉면이 서로 맞아떨어지는 공통의 코드로 통일했다. 그것은 표준화된 호환성을 기반으로 세상에 유비쿼터스적 소통의 자유를 불러왔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기존의 사물을 잘게 부수어 최소 단위의 조각으로 규격화하고 다시 그것을 짜맞추어 새로운 대상으로 만드는 것으로 요약된다. 조창환의 작업은 바로 이러한 미학적 스토리라인의 한 축에 잇닿아 있다. 그는 개인의 ‘예술가 되기’라는 약한 고리를 벗어나 보다 본원적인 창조성의 행위를 찾는다. 그것은 세계의 구조를 인수분해하여 그것을 다시 짜맞추는 행위와 같다. 즉, 몇 가지 단순한 규격으로 세상을 짓는 원칙을 만들어 그로 하여금 창작행위를 수행하도록 하는 것이다. 예술가가 중심이 되어 모든 것을 결정하는 구속적 프로세스에 끌려가는 대신에 몇 가지 제한된 조건들에 의해 창작행위를 구성하는 요소들이 스스로 작동하도록 풀어놓는 것이다. 대개 작가가 모든 작업의 과정과 결과를 통제하려 함으로써 자유를 잃을 때, 거꾸로 그는 이러한 제약의 고삐를 풀어놓음으로써 오히려 더욱 창의적인 자유를 얻는다.
퍼즐 조각이나 레고 블록의 요체는 각각의 모듈이 동일한 규격의 요철이 있는 지체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그들은 서로 어떠한 짝들과도 맞물릴 수 있다. 그것의 핵심은 표준화된 호환성이다. 그것은 파편화된 모듈에게 어느 형체라도 짜맞추어 낼 수 있는 가변성을 부여한다. 조창환은 이러한 모듈의 특성을 응용하여 기존의 형상을 허물고 그로부터 얻은 비교적 균일한 패턴의 잔해를 사용하여 다시 새로운 형상을 만들어간다. 그렇다면 기존의 대상과 새로이 만들어지는 것 사이에 생겨나는 차이는 무엇일까.
우리는 부지중에 미술작품에는 작가의 개성이 담겨야 한다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다. 이때의 개성이란 자아에 뿌리를 내리고 확고한 자기결정권을 가진 자신다움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자아는 늘 불완전한 미궁 속에 있다. 들뢰즈(Gilles Deleuze)는 ‘아티스트 되기’라는 삶의 방식을 일종의 탈영토화에서 재영토화에 이르는 여정으로 이야기한다. 아티스트는 우선 자신을 벗어나서 새로운 미지의 땅으로 가야한다. 라깡(Jacques Lacan)의 거울단계라는 정신분석학적 개념 역시 또다른 타자로서의 자기를 발견하는 것이지만 우리는 세계 속에서 항상 타자와 만나게 된다. 타자와 만남으로써 비로소 자아는 자신만의 비좁은 땅을 벗어나 탈영토화 된다. 일찍이 자아라는 개념은 이성을 중심에 놓은 이기적 세상에 봉사하였다. 그것은 세상 속에서 자아의 오만과 편견을 확대재생산하여 인류문명을 위험한 타자와의 대결구도로 이끌어갔다. 그리하여 무수한 극단적 대립을 낳고 전세계를 파국적 경쟁과 끊임없는 분쟁의 위기로 몰아넣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반면에 조창환의 조형작업은 자아와 타자의 대립을 무화시키는 사유와 시각적 자유에 발을 디디고 있다. 진정한 자유는 다른 것을 서로 잘 받아들이고 자신을 내어줄 때 자아의 아집을 벗어나 드넓은 화해의 바다에 이른다. 모든 것이 정해진 규격에 맞아떨어진다면 서로 다른 어떤 것과도 자유롭게 맞물릴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제약에서 벗어나 더 자유로운 만남을 낳는다. 이른바 자유를 제한함으로써 자유로워진다는 생각은 일견 모순이지만 이 모순어법은 인공지능을 기반으로 모든 것이 점점 네트워크로 연결되어가는 기술혁명의 시대를 꿰어주는 유니코드와 같다. 우리는 이미 모든 유비쿼터스적 소통이 이루어지는 시대의 한복판에 와있다. 아날로그시대의 표준화공정은 기계 산업의 발달을 견인하였다. 또한 디지털시대에는 온갖 사물의 생태계가 0과 1로 규격화된 두 가지 모듈의 무한조합으로 탈바꿈되었다. 그것은 모든 사물들이 다른 어떠한 것들과도 서로 맞물리는 사물인터넷 시대를 불러왔다. 조창환의 작업은 이러한 시대적 흐름과 궤를 같이 한다.
크기가 다른 몇 가지 규격에 따라 만들어진 패키지 박스는 어떤 사물이라도 용이하게 포장할 수 있다. 지난 작업에서 조창환은 먼저 그러한 포장 용도로 쓰이는 종이 박스를 잘라서 일종의 조각난 모듈을 만든 다음, 그것들을 어긋나게 이어 붙이고 쌓아 올려 그것이 가능하게 하는 어떤 미지의 형상을 조합해냈다. 그러한 작업에서 구상하는 형태는 단지 작가의 머릿속에만 있을 뿐이고, 구체적인 것은 박스 조각들을 붙이고 쌓아가는 과정에서 모듈들이 자연스럽게 허용하는 방식으로 결정되었다. 여기에서 작가의 창작 행위는 잘라낸 패키지 박스의 모듈이 가진 속성, 즉 색깔이나 모양이 촉발하는 우연성에 상당부분 좌우된다. 인간의 두상과 같은 안드로이드 형태를 갖추는 작품 계열은 작가의 구상단계에서의 막연한 상상적 스케치가 현실화되어가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우연적이고도 필연적인 창의성을 반영한다. 안드로이드는 인간의 형상이 가진 표준 형태를 기본으로 한다. 인간에게서 개성을 생략하면 공통적인 형상과 기능이 남는다. 원칙적으로 인간의 개성 또한 지놈(genome) 분석을 통해 모두 유형화될 수 있다. 그렇게 해체된 요소들을 모종의 알고리즘으로 재배열하면 새로운 문명을 낳을 안드로이드 회로가 될지도 모른다. 그 결과는 인간의 개념을 새로이 정의해야 할 정도로 근본적인 문제를 야기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기본적으로 인간의 문명에서 계열적으로 파생될 수 있는 어떤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자신을 파생시킨 공통적인 모듈인 지놈의 속성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작가의 이러한 작업의 핵심은 기본적 형태나 구조로 모듈화된 패키지 박스가 필연적으로 만들어가는 미시적 차원과 그것이 결구해내는 전체적인 형상이라는 거시적 차원의 우연적 결과에 있다. 물론 작가는 어렴풋이 어떤 그림을 구상하고 있지만, 그것은 패키지 박스 모듈의 조건에 따라 현실화되는 과정을 통해 미지의 형태로서 파생된다. 패키지 박스로 만든 모듈은 원래 지니고 있던 색깔이나 도안 등이 분절된 상태에서 어떤 전체의 부분을 만들어간다. 기존의 패키지 박스가 가진 원래의 용도와 규격은 와해되고, 본래 가지고 있던 또다른 요소인 평면성과 색깔, 맥락없이 잘린 디자인과 타이포그라피 등이 전혀 새로운 조형적 질서를 만들어간다. 모듈의 특성은 동일성이 만들어내는 통일성이다. 기본적으로 동일한 구조를 가진 그것은 전체를 이뤄갈 때 동일성의 특성을 반영하지만 전체의 형태는 개개의 모듈과는 다른 것으로 구현된다. 그것은 퍼즐 조각이나 레고 블록처럼 조립되어 또다른 전체를 만들어가는 개별적 단위의 역할을 한다.
위의 작업에서 그것이 두상과 같은 구체적 형태를 따르지 않고 비정형의 기하학적 형태를 만들어가는 경우에는 모듈이 가진 동일한 구조에서 유발되는 연쇄적 프랙탈 구조를 빚어낸다. 프랙탈은 부분이 가진 속성이나 모양이 전체의 구조에 담기는 형태로 나타난다. 하나의 모듈은 기본적으로 동일한 구조인 다른 모듈과 결합하여 전체의 일부를 만들어 가지만 원래의 색깔이나 약간씩 차이를 보이는 형태는 그것이 불어남에 따라 차이를 더 키워 종국에는 전혀 다른 전체를 만들어낸다. 여기서 작가는 자신의 의도나 조형의지의 개입을 최소한으로 억제하여 모듈이 거의 스스로 만들어지는 과정을 단지 따라가기만 하면 되었을 것이다.
이는 매우 놀이적이면서 고정된 자아의 영토를 벗어나는 탈영토화 과정이다. 여기에서 발현되는 전체적 형태는 동일한 형태가 비슷한 듯하면서도 두 번 다시 되풀이될 수 없는 비가역적 우연과 필연의 만남에 의해 이루어진다. 이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전체형태는 모듈의 가변성이 낳는 우연에 의한 창의적 생성의 결과이다. 따라서 여기에는 결국 기존의 패키지 박스가 가지고 있던 글자나 디자인의 색깔 등과 같은 요소가 가진 스토리들이 분절되어 나타나는 양상에 따라 새로운 스토리라인이 구성된다. 기존의 스토리가 와해되어 우연적인 스토리 요소로 환원되고 그것은 다시 모듈 자체의 특성을 머금음으로써 필연적으로 다른 것들과 쉽사리 결합하면서 새로운 스토리를 만들어 낸다. 이것은 산업적 환경의 부산물들이 작가의 최소한의 개입에 따라 스스로 새로운 구조로 변이되어가는 양상으로 정리된다. 그것은 작가의 의지 보다는 기존의 분절된 개별적 스토리에 따라 무한히 변형될 수 있는 가변성을 특징으로 한다. 그것은 서로가 어딘가 겹쳐지듯 닮아 있지만 각각의 작업의 결과가 매번 다른 시각으로 나타난다. 즉, 전혀 다른 이야기는 아니지만 같은 이야기의 다른 표현처럼 구현된다. 이는 동일성이 다른 강도와 리듬으로 반복되어 만들어내는 차이와 같다. 쟈크 모노(Jacques Monod)가 <우연과 필연>에서 말한 것처럼 자연계에서 우연이 만들어내는 것이 필연과 결합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어떤 합목적, 즉 전체성이 세계 안에 이미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이 놀이의 핵심은 작가의 의지는 최소화하고, 자연 또는 인간 밖의 질서나 규칙이 조형행위를 만들어내는 자연발생적 자유에 있다.
작가 조창환의 이러한 작업의 의의는, 몇 가지 정해진 규격을 따름으로써 자유의지가 제한받는 것 같지만 그것은 오히려 서로 자유롭게 만날 가능성을 열어 놓은 규격적 자유가 창출해내는 무한변이적 질서에서 찾을 수 있다. 그것은 작가가 어떤 형태를 고집하는 방식으로 자아를 드러내어 무한변이를 낳는 조형적 자유를 축소하지 않을 때만이 가능해진다. 그가 2017년 5월 ‘갤러리 울’에서 김성호 작가와 ‘퍼즐 H’라는 그룹의 이름으로 발표한 <가든 No.9> 시리즈에서는 다른 작가와 작업의 몫을 일정부분 나눔으로써 작가 개인의 개입을 최소화하려 한 정황이 뚜렷한데, 여기에서 이러한 작업의 미덕은 충분히 확증되었다.
미술은 놀이적 측면을 통해 교육적인 효과를 얻기도 한다. ‘가베’ 조각은 아이들에게 여러가지 색깔과 형태를 가진 조각들을 끼워 맞추는 경험을 통해 세상을 풍부하게 보고 받아들이는 훈련을 하는 교육용 도구이다. 근래의 작업에서 조창환은 이러한 교육용 자료에서 얻은 색편이나 특정 기능을 가진 기존의 몸체에서 떨어져 나온 여러가지 형태의 부품 같은 요소들을 찾아내어 준비한 개개의 오브제를 다양한 형태와 색깔의 스펙트럼을 가진 모듈로 사용하기도 한다. 그것을 두개의 영역으로 분리된 캔버스 프레임의 뒷면의 공간을 이용하여 배열해 나감으로써 부분적인 ‘프레임’에 나뉘어 있지만 그 안에서 서로 다양한 관계로 공존하는 전체를 만들어내고 있다. 그 작업의 결과는 점점 무한증식해가는 어떤 첨단 도시의 풍경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가 포화상태의 도시문명 속에서 탐험하듯이 찾아낸 각종 플라스틱 오브제의 색깔 모듈들은 그 자체 안에 이미 그것들을 쏟아낸 도시의 얼개를 품고 있는 자신만의 프랙탈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가 다양한 색깔과 형태의 오브제 파편들을 찾아내는 작업은 기존의 모체에서 떨어져 나온 사물들에게 새로운 환경과 영토를 찾아주는 동시에 그것들이 이미 가지고 있는 규격과 제한적 자유를 통해 저절로 조형 행위를 수행해내는 프로세스로서 스스로를 탈영토화하는 행위이다. 그것은 <가든 No.9> 작업에서 꽃봉오리 구조와 같은 잠재적 형태가 계속적으로 증식하여 공간을 채워가는 형식으로 이루어진다. 이처럼 그의 작업은 조형 요소 자체의 내적 질서에 의해 스스로 증식하여 세상을 채워 나간다. 그것은 어딘가 수분이 거의 없는 극한의 건조한 환경에서 씨앗을 보호하기 위해 돌돌 말린 채로 지내다가 아주 오랜만에 비가 오거나 하여 다시 수분을 만나면 생생한 식물로 되살아나는 부활초(復活草)의 생성을 닮았다.
[평론] 더 가든_The Garden -그로테스크와 상상정원
· 시각적 유쾌함과 유의미한 효과
퍼즐H(김성호+조창환)의 협업 작업에서 눈에 두드러지는 지점은 독특한 재료의 사용에서 출발한다. 그룹 퍼즐H는 패키지 박스(Package Box)를 이용해서 작업하는데, 이 재료의 사용은 ‘계시적 사건’ 혹은 ‘우연한 만남’을 통해서 시작된다. 어느 날 지인이 가져온 피자의 포장지 박스에 있는 디자인이 매력적으로 느껴졌고, 그 후 패키지 박스로 작업이 가능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궁금증에서 출발했다. 퍼즐H는 오랜 기간 여러 시행착오를 거쳐서 제품의 브랜드 의미를 지우는 대신 패키지 박스에 있는 디자인을 이용한 작업에 치중하였다. 패키지 박스는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제품의 포장지로 그 안에 상품을 보관하고 제품을 홍보하는 고유의 역할이 있고 또한 종이 재료로서 가볍고 파손이 쉬워 많은 한계가 있었음에도 퍼즐H는 이것들을 예술로 승화시키는 노력을 시도하고 있다.
패키지 박스를 이용한 퍼즐H의 작업에는 크게 두 가지 특성이 있는데, 그 하나로 패키지 박스는 소비자가 물건을 구매 후 상품의 내용물을 개봉하면 폐품 또는 폐지가 되어야 하는 태생적 한계를 극복하고 버려진 혹은 남겨진 포장지를 예술작품의 재료로 사용했다는 점에서 이채롭다. 이런 방법은 ‘적정기술(appropriate technology: 사회 공동체의 정치적, 문화적, 환경적 조건을 고려해 해당 지역에서 생산과 소비가 가능하게 만들어진 기술)’을 예술적으로 승화해서 ‘적정예술(適正藝術)’화한 사례라 할 수 있다 또 하나는 패키지 박스의 표피를 장식하는 자극적인 원색의 ‘초정상 자극(Supernormal Stimuli)’효과를 극대화 했다는 점이다. 현대 산업사회에서 살고 있는 인간은 온통 초정상 자극에 둘러싸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평범한 과일도 색체가 강렬한 것에 이끌리고 주변의 평범한 사람보다는 매력적인 연예인의 모습에 눈길이 더 가는 것이다. 퍼즐 H의 작품이 신선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실재로 우리의 주변에 있는 현실에서 시각적 감동을 극대화한 잘 디자인(well design)된 패키지 박스의 일상적 체험을 입체 작품으로 형상화하여 감상자들과 공감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 무겁지 않은 시각적 유쾌함과 결코 가볍지 않은 유의미한 효과를 부각시켰다는 점이다.
· 클로즈업, 관찰충동 & 그로테스크 효과
퍼즐H의 흉상 조각을 살펴보면 첫째, 인간의 신체기관 중 외형적으로 얼굴과 머리 부분을 크게 과장하여 묘사한 것은 카메라의 시각화 기능 중 하나인 ‘클로즈업(close-up)’효과와 유사한데, 특히 광각렌즈를 활용한 근접 촬영은 인물의 왜곡과 과장이 심화되어 공간 확장이 더욱 극대화 되어 나타난다고 월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은 <기술복제시대의 예술 작품>에서 말한바 있다. 하지만 이런 설명 외에도 클로즈업 한 대상을 집중해서 살펴보게 하는 측면이 존재하는데, 즉 머리 부분이 다른 부분에 비해서 시각적으로 크게 집중하게 한다는 것이다. 작가에 의하면 아프리카 한 부족 마을에서 리더의 머리를 일부러 크게 만드는 편두문화에 착안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부분은 한국의 옛 문화에서도 동일하게 발견되는 측면이 있는데, 왕실에서 왕은 상투관을 썼고 왕비는 유난히 큰 올림머리를 해서 시각적으로 머리를 크게 보이게 했다. 이런 효과는 왕과 왕비가 신하들과 백성들 앞에서 대화를 할 때 얼굴에 집중하게 하여 권력의 지배를 곤고히 하는 정치적 효과를 노리고 있다. 이런 사례를 비추어 볼 때 퍼즐H의 작업은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동ㆍ서양의 문화를 융합시키는 시도를 하고 있다.
둘째, 관람객의 입장에서 국적이 불분명한 흉상조각을 보면서 들었던 생각은 라캉(Lacan)식으로 해석하면 ‘관찰 충동(pulsion scopique)’을 유발하게 한다는 점이다. 관찰충동은 감추어져 있는 것을 발견하려는 충동인데 이 작품을 자세히 관찰하면 거대한 마스크(mask)를 쓴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흥미로운 지점은 마스크 효과에서 단순하게 융(Jung)이 언급한 페르소나(persona)를 의미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서 하나의 거대한 마스크를 한 얼굴로 보인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일상에서 어떤 사람의 얼굴을 보면서 마치 얼굴 자체가 마스크를 쓴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가 있는데 흉상조각은 그자체로 마스크 역할을 해서 그 이면에 페르소나를 인식하기보다는 기표적인 측면에서 마스크 자체인 것이다.
셋째는 첫째와 둘째의 효과가 맞물려서 결과적으로는 “그로테스크(grotesque)”한 이미지를 생성한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마치 예술이라는 음식 속에 그로테스크라는 양념을 집어넣은 것처럼 해석되는데 이때의 그로테스크는 확정된 경계가 없는 개념의미를 생성한다. 그로테스크는 고대 그리스에서 출발한 전통의 미(美)에서 벗어난 형식을 지니다가 이후 반 미학의 주류로 성장했다. 그것은 아름다움의 외곽에서 전통과 관습에 도전하고, 새로움과 변화에 대한 관용의 정신을 요청하며, 변화와 다양성의 촉매제이자 사회에 활력을 부여하는 요소로서 작용해 왔다. 근래 들어 그로테스크는 예술계를 넘어 우리 시대를 읽어내는 주요한 키워드가 되고 있으며 포스트모던 사회의 전면에서 거대한 문화·사회적 현상으로 부상하고 있다. 퍼즐H의 그로테스크한 부분은 전통적인 아름다움의 형식을 벗어나 불균형적이며, 복잡하면서 뒤틀린 왜곡, 탈경계적 측면, 보편적 특성이 아닌 개별과 개성, 주류가 아닌 비 주류적 가치를 추구한다. 이런 현상은 현대 사회에서는 앞서 언급한 요소들을 적극적으로 소비하며 변화된 취미와 새로운 가치를 추구하는 정신과 맞물리는 지점이기도 하다.
· 상상의 정원과 그로테스크
퍼즐H는 그동안의 전시를 통해 작가 자신만의 독특하고 생기 넘치는 그로테스크한 효과를 개발해 왔다. 이러한 효과들은 일상적인 오브제를 비현실적인 상황으로 설정해서 새로운 세계를 표현한다. 16세기 그로테스크의 용어와 양식의 탄생은 이탈리아에서 그로테스크 장식화를 동반하는 인조동굴과 인조석굴 정원을 유행시켰으며 전 유럽으로 퍼진바 있다. 현대의 그로테스크에 관한 연구의 추세는 다원화를 향하고 있으며 정원학으로 발전하고 있다는 점에서 정원과 그로테스크는 밀접한 관계를 형성한다.
퍼즐H가 패키지 박스를 이용하여 구현한 꽃과 별 모양 위에는 ‘상상의 정원’이 안착되어있다. 꽃과 별은 생명을 상징화하고, 마음속에 동경하는 아름다움처럼 상호 유사한 이미지의 원형을 간직한다는 점에서 동일성을 확보한다. 좀 더 구분하면 꽃은 현실성의 아름다움을 담보한다면 별은 이상적인 혹은 상상적 아름다움을 현실 속에 구현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작은 정원 속의 세상은 인공적인 자연과 더불어서 인간과 환경이 조화롭게 표현되어있다. 패키지 박스가 상품화된 세상을 상징적으로 묘사되었다면 인간과 자연의 모습은 자연친화적, 상호보완적인 이상적인 관계를 드러내고 있다. 정원에 등장하는 오브제는 작가가 여행 중에 수집한 자그마한 자연석들과 나무와 식물의 미니어쳐 그리고 도마뱀, 양, 원숭이, 말, 사슴 등과 인간 형상의 미니어처가 함께 등장하는데 평범해 보이는 사물들은 새로운 정체성을 가지고 재탄생 되고 움직임을 통해서 순환된다. 상상의 정원에서 우리는 그 속에서 지탱하는 삶의 독특한 단편 이야기를 바라보게 된다. 꽃과 별 속의 정원은 일상적 물체들이 일상적인 기능들을 초월해 존재하도록 허용하는 작가만의 독자적인 세계가 탄생 한 것이다. 패키지 박스 중심에 만들어진 ‘작은 세상’은 사물들을 지나치게 과장하거나 변화시키지 않고 우리에게 익숙한 개념적, 자연적인 질서 그리고 사물의 균형 잡힌 구성을 통해서 다른 사물과의 미묘하고 언캐니(uncanny)한 관계를 형성한다.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퍼즐H는 일상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패키지 박스가 상품 개봉 후 곧 바로 용도 폐기되는 현실을 ‘적정예술(適正藝術)’로 발전시켰고, 발견의 미학은 한 걸음 더 나아가 패키지 박스에 인쇄된 표피의 자극적인 원색을 ‘초정상 자극’ 효과로 진화시켰다. ‘클로즈업’ 효과를 적용해서 두상을 시각적으로 크게 집중시킨 국적 불분명의 흉상 조각에서는 관객의 ‘관찰 충동’을 유발시켰고, 마지막으로 꽃과 별 모양의 패키지 박스 위에 ‘상상의 정원’을 설치해서 작가만의 독자적인 세상을 만들어 냈는데, 이런 모든 행위는 내용적으로 ‘그로테스크한 의미 표현’을 위한 ‘자기 목적성’을 짜임새 있게 구현한 것이다.
퍼즐H의 작업은 전통적인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감각적 사유에만 몰두 하지 않았으며, 재료 그 자체가 지닌 내용을 현대적인 방법으로 재해석하여 매체에 내재한 문제의식을 그로테스크라는 시대적 정신과 부합해서 입체적인 형상으로 흥미롭게 전개된다. 현대사회에서 그로테스크는 복합적이고 다양한 이슈를 가지고 있지만, 국내 예술계에선 아직 그로테스크 미학이 정착되지 않았다. 퍼즐H의 이번 전시는 그로테스크의 성과와 가능성을 미리 타진한다는 의미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생각한다.
- 김석원(고려대학교 역사연구소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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