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재 선택
작품은 캔버스에 오일 페인팅인 서양화 양식이지만 색감과 내용은 동양화, 특히 조선 후기 민화의 상징성을 차용한다. 처음부터 작품이 민화를 차용한 것은 아니다. 대학에서 서양화와 판화를 전공함. 판화의 색채 표현에 한계를 느껴 서양화로 돌아왔다. 그 후엔 고목에 심취해 나무만 그렸다. “꽃이나 잎 하나 없이 마른 고목에 매력을 느껴 많은 드로잉을 하였다 . 나무를 그리다 사군자에서 매화를 발견하고 나무에 매화꽃을 달면서 부터, 사군자 십장생 등으로 소재를 확장하다, 민화를 접한 뒤 그 매력에 빠졌다.
민화는 일반 백성들이 복을 빌기 위해 그렸던 그림이다. 전문 작가가 그린 민화는 그 표현과 색채가 대단합니다. 거기에서 큰 울림을 받았다. 대중 화가로서 사람들에게 좋은 기운을 줄 수 있는 그림을 그려야겠다고 결심한 게 그때부터였다.
장수도에 나오는 십장생, 초충도, 어해도, 사군자 등에서 나오는 사물들의 상징성을 소재로 많이 이용함. 이번전시는 어해도에 주로 등장하는 잉어와 매화이다. 잉어는 재물, 등용문, 다산 등의 상징성을 지니고 있어 옛날에 선비의방 이나 신혼방에 주로 걸어놓고 살았다고 한다. 매화는 모진 고난에도 꽃을 피우는 강인함이 있어 예로부터 문인들이 많이 사용한 소재이다.
조형
지난해까지는 실제 잉어와 움직임, 지느러미 모양, 눈 모양 등을 최대한 흡사하게 그렸다.
어떻게 표현해도 힘이 부족하게 느껴졌다. 이왕이면 더 강한 기운을 담고 싶었다.
잉어를 긴 수염, 천사 같은 날개가 달린 새로운 지르러미를 만들어줌-잉어의 움직임을 강조하기위해 선적인 요소들로 드로잉 하여줌으로 꿈틀거리는 힘을 강조하였다.
힘 있는 움직임의 조화가 인간에게 이로운 기운을 뿜으라고 잉어에 힘을 불어넣고 있다.
잉어의 눈은 물고기의 눈이 아닌 사람의 눈처럼 흰자와 눈동자가 또렷해 놀람, 화남, 애정 등 감정까지 담으려 하고 있다. 스케치북에 드로잉해 보고 마음에 드는 표현을 캔버스에 옮기기를 수없이 반복한 끝에 살아 있는 듯한 느낌의 잉어가 탄생했다. 현실에는 없는 나만의 잉어이다. 매화 또한 강인한 힘을 강조하기위해 두터운 물감과 힘 있는 붓질로 나무를 형성하고 꽃은 가강 고운 색으로 표현하려고 했다.
많이 쓰는 색
오방색 (흰색 검정 노랑 파랑 빨강)의 원색들을 반복하여 칠하다 보면 어느 순간 제 맘에 드는 색깔이 나온다. 덧칠하면 이전의 색들이 사라지는 것 같지만 겹겹이 칠해진 속 색깔이 미세하게 배어 나와 깊어진다. 들여다보면 빨려들어 갈 것 같은 오묘한 분위기를 뿜어 내기도한다. 배경색을 캔버스에 입히는 작업만 해도 오랜 시간과 공이 들어간다.
가장 좋아하는 색깔은 빨강, 그다음은 노랑이다. 노란색은 특히 손이 많이 간다. 평균 20∼60번은 덧칠해야 내가가 원하는 색감을 얻을 수 있다.
작품세계
의식과 무의식은 인간의 정신세계이다 이러한 정신세계의 행위에서 나온 작품들을 제작한다.
바탕은 무의식, 소재들은 의식의 의미를 부여하여 정신에서 만들어낸 물질이 작품임을 강조한다.
바탕을 만들어가는 과정은 제 무의식에 맞닿아 있는 것 같다. - 물감을 가지고 장난치듯 뿌리고, 흘리고, 찍고, 붓으로 칠 하면서 놀이를 하듯이 나의 의식적 행위는 전혀 없이 해나감
이렇게 무의식적으로 제작된 바탕위에 그리는 잉어나 꽃나무 등 민화에서 사용되는 소재들은 의식적으로 그려지는 것이어 의식과 맞닿아 있다.
이렇게 만들어진 물질들이 사람들에게 좋은 감정과 감동을 주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작업을 한다.
지인들이 저를 두고 ‘당신은 나이가 들어도 변치 않는 강한 에너지가 있다’고 말한다. 작가의 색을 찾은 것인지, 언제부터인가 강렬한 색감이 좋다.
그림을 그리기 시작해 지금껏 한 번도 붓을 놓은 적이 없다. 생계를 위해 낮에는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밤에 작품 활동을 하는 생활을 30년 가까이 이어오고 있다. 서양화, 동양화, 판화, 컴퓨터 그래픽 등 다양한 영역에서 내공을 쌓고 있다.
작품을 보시는 분들이 어떤 느낌을 받으실지. “그저 힘나고 기분이 좋아진다면 더없이 좋겠습니다.”
레미콘 차는 달리며 그 가치를 인정받는다. 달리는 시간에서야 그는 굳을 준비가 되는 것이다. 공사장에 도착하자마자 레미콘은 쉴 여유도 없이 잘 섞인 콘크리트를 거푸집에 쏟는다. 그 작업으로부터 마천루가 솟는 것이다.
잉어라는 존재는 분명 살아 있는 신화다. 돈을 들여 아이들과 같이 먹이를 던져주며 눈을 맞추려 하는 대중의 사랑을 받는다. 이들을 해하려고 낚시줄을 드리우거나 떡밥을 바늘에 꿰지 않는다.
이 모든 동시성의 수식어는 화가 김양훈에게만 가능하다. 그의 이번 전시는 지금까지 해왔던 작업과 연동되면서 전혀 차원이 다른 기법과 표현력이 드러난다. 한전 아트센터미술관에서의 연속 전시로부터 쉬지 않고 레미콘 트럭 양생 기법 작업을 해온 결과다. 이는 레진을 사용하거나 투명한 굳히기로 잉어가 노니는 모습을 영구적으로 판에 박아둔 듯한 형식도 포함한다. 문학적 수식어인 달리며 굳히는 쉴 틈 없는 그의 작업형태가 곧 중단 없는 그의 그림의 발전을 의미한다. 또 하나는 분명한 마티에르의 변화가 보인다는 것이다. 단순한 것이지만 작가들만이 느낄 수 있는 어떤 경지에 이른 것이 느껴지는 단계에 도달한 것이다. 이제 자리를 잡고 쏟아부으면 김양훈의 마천루와 잉어들이 등용문을 오르는 장면을 리얼하게 볼 수 있다. 신비의 순간인 것이다.
이번 전시의 잉어들을 가만히 보면 지난번의 뭉툭하고 거무티티한 힘의 잉어가 새악시를 만나 가정을 꾸린듯하다. 단란한 가정하의 희노애락이 드러난다. 그 가족애와 잉어의 풍부한 유영은 지느러미와 긴 수염, 천사 같은 날개가 달린 새로운 잉어의 품종을 탄생시킨 눈부심이 먼저 읽힌다. 힘에서 스스로 항진하는 자아를 발견한 잉어의 세계가 구현된 것이다.
유리안에 든 어항이 아닌 자연에서 노니는 진정한 잉어의 경계를 선보인 것이다. 달리며 그의 소임을 다하는 레미콘처럼 그리며 스스로 도를 깨치듯 그리기의 자유를 얻은 김양훈의 나이 53세다. 유리어항이 아닌 손만 뻗으면 잡히는 현실감과 버추얼리얼리티의 증강현실을 보는 듯 유려한 몸가짐을 살랑댄다. 그와 그들의 눈은 어느덧 우리 눈처럼 흘기고 애원한다. 둥지를 튼 건강한 가족 군에서만 나올 수 있는 생동감이다.
보다 더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건 지난해 전시까지 선보인 잉어의 움직임, 지느러미 모양, 눈 등을 최대한 잉어답게 그렸던 데에서 반전의 기법을 발견한 것이다. 더 강한 기운이 느껴지면서도 하면을 응시하는 관찰자의 마음을 헤아린 것이다. 보는 행위가 신명나고 몰입된다. 스케치북에 수십차례 한 동작을 드로잉 한 것은 바로 레미콘에 양생재료를 쏟아 붇는 작업과 같았다. 그가 붓긑으로 전해지는 멈춤의 순간 마음에 드는 표현을 캔버스에 고착화 시켰다. 수없는 반복을 위해 인류가 찾아낸 건축의 꽃 레미콘처럼 현장을 항하며 최적의 밀도와 농도, 섞임의 지점을 찾아낸 것이다. 마침내 ‘흐르는 느낌’의 잉어가 탄생했고 그는 마음껏 그들에게 날개를 달아 날아가도록 했다. 민화를 접한 뒤 판화와 서양화를 거쳐 지금의 작업형태에 빠진 것 역시 잠시도 쉬지 않고 전람회장을 찾은 우리에게 달려온 레미콘의 달리며 흔들리고 회전한 연속 작업의 결과다.
덧칠하고 겹겹이 더해진 색깔은 더 농후해졌다. 한층 깊어진 물인지 하늘인지 모를 선상의 그곳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기묘함을 준다. 그가 지금까지 선보인 매난국죽, 그리고 잉어들이 종합적으로 꿈틀대기 시작했다.
이제 통한다. 무엇인가 그의 작업은 나와 대중을 통하게 하는 것이다. 견고한 콘크리트처럼 그의 아성과 이상을 실현하듯 말이다. 갤 미디엄과 김양훈의 그림 작업이 가져올 다음 전시가 문득 더 궁금해졌다.
반짝거림과 투명함이 보여주는 레진을 활용한 그의 작품세계가 어떻게 흐를지 자못 궁금하다.
꿈틀, 꿈속에서의 뒤틀림 혹은 욕망의 나래, 사랑의 울타리...온갖 수식어도 다 소화 할 것 같다. 가늘고 얇은 꼬리는 척추와 척추를 지휘하는 뇌에서부터 마련되기 때문이다. 그 뇌를 쉬지 않고 숨쉬는 작가가 그것을 가능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