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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ng, Seung ho

장승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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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TA
학력

2020 홍익대학교 일반대학원 회화 석사
2018 조선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 학사

주요 개인전

2019 일상의 흔적 그리고 흔적 (사이아트 도큐먼트,서울)

주요 단체전

2020 Art in Pet (ADM 갤러리,서울)

2020 DongNeArtFestival (ADM 갤러리,서울)

2018 제2회 COSO 신진작가 기획전 (갤러리 COSO,서울)

레지던시 및 수상경력

2018 조선대학교 미술인상

Text
[작가노트] NOTE
NOTE.


회화는 삶의 존재이유이자, 풍경이자, 정신적 어머니와 같은 존재가 되었다.


나는 대한민국에서 태어났고 대한민국 학교와 군대를 제대했다. 그 안에 존재하는 통념과 심리적 억압은 나의 자아를 불구화시키고 기형화 했다. 외로움의 늪으로 빠져들게 했다. 외로움은 차갑고 시린 연체동물을 연상하게 한다. 그 늪에서 운명처럼 그림을 만났다. 그녀는 해방의 탈출구를 비춰주었다. 그 길은 운명처럼 나와 회화의 "존재이유"가 되었다.


"미꾸라지 한 마리가 물을 흐리는구나" 군대에서 분대장이 했던 말이었다. 나는 미꾸라지이자 관심병사였다. 화가 고흐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나 또한 가슴속에 억눌려 있는 무언가가 가득 차 있다. 고통스럽다. 가끔 내가 아픈 사람은 아닌가 의심될 때가 있다. 회화는 억눌려 있는 감정을 해방시키는 통로의 역할을 한다. 그 안에서 자유롭게 존재하며 살아있음을 느낀다. 실존하는 존재로 다시 태어난다.


세상에 그녀와 마주보고 있는 내가 존재한다. 외 모든 소리는 소거된 상태다. 나는 그녀와 대화하는 것에 온 정신과 몸을 맡긴다. 춤추듯 흐름에 따라 움직인다. 흐름은 음악처럼 격렬해질 때도 잔잔해질 때도 있다. 나는 그 흐름에, 운명에 순응한다.


회화는 먹고 배설하고 숨쉬는 일상적이며 습관적 행위에 근거한다.


회화는 회화가 회화로서 살아갈 수 있는 이유이자 원동력이자 근거가 된다.
[평론] 살아있음, 존재하고 있음에 대한 근거로서의 흔적에 대하여
장승호 작가에게 회화는 감각의 바로미터(barometer)와 같은 기능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즉 순수하게 감각한 것들이 어떠한 여과장치도 거치지 않고 그대로 기록되는 기구와 같은 역할을 하는 것 같다는 말이다. 이번 전시에서 보여주는 작업들을 살펴보면 강하게 요동치는 정서가 보이기도 하고 수직선이나 수평선이 교차되는 무거운 적막이 흐르는 것 같은 정서가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그 정서들은 작가가 표현한 두꺼운 물감덩어리들의 두께만큼이나 거칠어서 야생적인 느낌으로 다가오고 있다. 작가는 그의 작업이 무엇인가를 그리는데 목적이 있지 않다고 하였다. 그의 시선은 외부에 있지 않고 내부에 있기에 느끼는 그것을 그대로 그려낸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가 그려내는 것들은 감각 대상에 관한 것이라기 보다는 그 대상을 감각하는 작가 자신의 내적 상황이나 정서의 흐름과 같은 것과 더 관련이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작가는 또한 살아있는 것 자체를 느끼기 위해서 그림을 그리고 그리는 행위 그 자체에 의미를 둔다고 하였다. 다시 말해 실존하는 자신의 존재 자체를 확인하는 행위와 같은 것이라는 말이다. 그렇기에 그의 작업은 시간의 흐름에 따른 변화와 움직임이 담겨있음을 명확히 느낄 수 있다. 살아 움직이는 존재로서 그 흔적이 남겨진 공간이 그가 작업해낸 캔버스인 것이다. 그래서 작가는 자신의 작업에 대해 나를 살아있게 하는 이유라고 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장승호 작가에게 있어서 작업은 마치 음식물을 먹고 배설하거나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행위처럼 원초적이고 생리적인 현상과 닮아 있다고 볼 수 있다. 그것은 어떠한 인위적 가공도 하지 않은 날것과 같은 것이며 그만큼 거칠어 보일 수 있다. 그러한 의미에서 작가는 그의 작업 공간을 정돈시키고 아름답게 배치하기 보다는 무질서한 혼돈의 상태로 놓아두기를 원하며 그가 움직이고 행동한 공간을 그대로 남겨둔 상태 그 자체를 작업으로 제시하고자 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므로 장승호 작가의 작업은 그가 본 외부의 대상을 그대로 재현하거나 해석하여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외부 대상과 만나게 될 때 그의 내면에 마주치며 휘몰아치는 내적 감성의 변화를 추적하거나 외부로부터 촉발된 감성의 연쇄 반응을 기록하듯 남겨둔 것이 작업이 되고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작가는 작업을 해나갈 때 즉흥적으로 해나가는 것을 즐긴다고 하였다. 어떠한 계획이나 준비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붓이 아니라 주변에 놓여있던 걸레가 물감을 캔버스에 묻히는 도구가 되기도 하고 작업실의 타커(tacker)심이나 머리카락이 물감을 대신하기도 한다. 먹고 남긴 우유팩이나 자신의 주위에 버려진 모든 것들이 그에게는작업도구였던 것이다. 작가는 그의 일상 자체를 사용하여 그대로 그 일상의 흔적이자 그것과 상호작용하는 자신의 내적 상황이 화면에 남겨지도록 한 것이다.

그런데 작가는 그가 살아가며 감각하는 것들 혹은 숨쉬며 먹고 배설하는 행위와 같은 자신의 일상적 삶 자체를 화면에 흔적으로 남겨두면서 그 흔적들이 새겨놓게 된 자신의 존재 자체를 더 확실하게 감각할 수 있게 되었던 것 같다. 그는 자신의 일상과 그로부터의 감각을 저장하듯 화면에 옮겨두었을 뿐인데 그 일상에 대한 감각의 흔적은 자신의 존재에 대한 명료한 흔적으로 다가오고 있었음을 자신의 작업 결과물로부터 다시 감각하고 각인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작가는 그가 캔버스에 남겨둔 것은 물감 덩어리나 일상에서 쓰던 물건들이었음에도 자신의 움직임과 만나서 캔버스에 흔적으로 남게 되자 마치 자기 자식이나 분신을 만난 것처럼 특별한 존재로 탈바꿈하는 것을 느끼게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작가는 자식이나 분식처럼 자신을 비추는 거울과 같은, 그리고 또 다른 의미를 갖게 되어버린 작업 결과물들을 보게 되면서 자신이 살아 있음을 한층 더 강하게 느끼게 되었던 것이다. 작가는 그의 일상으로부터 감각하는 것들을 단지 흔적으로 남겨두었는데 그 흔적들은 이제 작가 자신에게 실존하는 존재로서의 의미를 다시 선명하게 새겨주었음을 그의 작업들에서 다시 확인하게 된 것이다. 사람은 자신의 내면 세계를 볼 수 없다. 또한 살아 있다는 것을 본다는 것은 참으로 모호할 수 있다. 그러나 장승호 작가는 먹고 배설하고 호흡하는 것과 같은 살아 있음에 대한 움직임, 맥박이 뛰는 것처럼 생생하게 살아 있고 존재하고 있음을 자신의 작업에서 만나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작업을 보는 것은 관객들 역시 작가가 발견한 것처럼 역동적으로 움직이거나 침묵하는 것과 같은 물감 덩어리들과 사물의 흔적들 그리고 작가의 행위가 그대로 담긴 흔적들에 동화되어 살아있음, 존재하고 있음에 대해 감각하고 생각하는 시간을 갖게 되는 것에 의의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미술평론 이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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